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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철저하게 망가진 공적(公的) 시스템

최종수정 2016.12.15 11:25 기사입력 2016.11.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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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최근 재벌 총수들이 일제히 검찰에 불려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수백억 원 기금의 성격을 밝힌다는 것인데, 당연히 대가성이 없다고 부인했겠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돈을 낼 테니 세무조사를 면제해 달라고 노골적인 청탁을 한 기업이나 거액을 이미 출연하고도 추가로 70억원을 더 낸 기업,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말 값과 훈련비 명목으로 수십억 원을 특별 지원한 의혹을 받는 기업 등 적어도 일부 기업들은 대가성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정부가 주식을 민간에 다 팔아 민영화가 된 KT나 포스코 등도 대통령의 비선실세들에게는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에 대해 정경유착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일부는 당연히 법적 책임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대통령이 직접 재벌 총수들을 몇 차례나 청와대로 불러 ‘좋은 일에 돈 좀 내시라’는 독촉했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청와대의 경제수석이 직접 나서서 기업들의 ‘성의’를 꼼꼼하게 챙기거나 특정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물러나라고 압박한 사실이 드러나는 마당에 과연 어느 재벌이 태연하게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정부가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등 공권력을 동원해서 마음먹고 ‘털기’에 나서면 비오는 날에도 잔뜩 먼지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강을 유지하고 시장경제를 수호하라고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국세청, 공정위, 그리고 청와대의 경제수석실이 이런 용도로 기업들을 겁주기 위해 설립된 정부기관이며 조직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는 이유이다.

최순실과 그의 추종자들은 또 국가 예산을 손쉽게 빼돌렸다. 문화융성이니, 스포츠 영재육성이니 그럴듯한 포장을 기획하고 이곳에 정부예산을 넣도록 해 너무나 쉽게 거액의 예산을 가로챈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세금의 불법 유출과 국가예산 낭비, 최순실 일당에게 예산이 가도록 내부에서 조력한 공무원들을 감시하는 공조직이 없는가? 조직은 분명히 있다. 바로 감사원이다. 그런데 수많은 공무원들을 떨게 만드는 그 감사기능이 이번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실은 수많은 ‘최순실 기획예산’과 불법 유용을 ‘정말로’ 눈치채지 못 했을까? 직접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은 커피 한 잔도 마셔서는 안 된다고 깐깐하게 주장하던 권익위원회의 부패 방지 기능은 지난 몇 년 동안 고장 나 있었는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조사하는 민정수석실과 막강 정보력을 자랑하는 국정원은 또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최씨 일가와 주변인들의 인사 전횡과 대통령 권력남용, 예산 빼먹기에 대해 정보를 수집해 그걸 대통령에게 직언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과 자유시장경제의 기틀을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만든 각종 제도와 조직, 감시와 견제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망가졌고 그 조직에 있는 상당수 사람들이 눈치를 채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침묵의 카르텔'에 동참한 것이다. 이 정도 사태가 터졌으면 감시와 견제를 맡은 공적 조직의 몇몇 수장들이라도 그동안 받은 월급을 반납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면서 자리를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닐까?
최순실 일가와 그의 추종자들이야 당연히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사건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 역시 언젠가는 합당한 법적 혹은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고장 난 국가 유지 시스템들이 저절로 복구되는 것은 아니다. 망가진 시스템을 또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든 다시 생길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감시와 견제조직, 정보기구와 공권력의 총체적 시스템 실패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차제에 반드시 제도를 고쳐야 한다. 모두가 권력 앞에서 'Yes'라고 할 때 용기 있게 'No'를 외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견제시스템이 돼야 한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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