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말고 서둘러라. 미국의 보복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 같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3라인을 완공(1988년 10월)하기 2년 전인 1986년 초.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선대회장은 반도체 3라인 투자를 검토하던 팀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당시 팀원들은 '미국의 보복'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의 보복은 '무역제재'였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73세의 나이에 위협요인이 많았던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기존의 기업가정신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했다는 점에서 호암의 기업가정신은 '보국적'"이라고 말했다.
호암 사후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반도체사업에 속도를 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진이 남아있던 2009년 삼성은 그해 3분기 중 4조2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9개 기업의 영업이익 합계보다 2배가 많았다. 삼성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모바일, 가전, 디스플레이 등 전 부문에서 글로벌 초일류의 반열에 올라섰다.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로 매년 11월 다음 해 사업계획 세우느라 분주해야 할 기업들은 일손을 사실상 놓았다. 반기업정서가 다시 부각되면서 기업가정신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오는 19일 호암 서거 29주기를 맞아 호암의 기업가정신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더욱 크다. 범삼성가도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 있는 선영에서 29주기 추모식을 열고 호암의 정신을 되새긴다.
호암의 인재관은 최근 국내외 여러 상황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암은 1982년 9월4일 사장단 오찬회의에서 "발전할 수 없는 사람을 관찰해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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