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국감 풍경, 작지만 큰 희망= 김영란법 시행을 전후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감장이다. 지난26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선 야당 의원들이 질의를 마친 뒤 외교부 1층 일반직원용 구내식당에서 갈비탕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반찬도 계란찜, 생선구이, 멸치볶음, 오이지 등으로 간단했다. 1인당 1만원의 식대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행정실에서 계산했고, 외교부 간부 등도 동석하지 않았다. 대법원과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대한 국감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여의도 식당가에선 희비가 엇갈렸다. 국정감사 시즌이라 모든 음식점이 인산인해를 이뤘어야 하지만 일식집 등 고급 음식점은 평소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진한 예약률에 울상을 지었다. 피감 기관들이 의원실 보좌관·비서관을 모시고 거하게 대접하며 폭탄주를 돌리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면 피감기관 직원들이 단체예약을 잡은 설렁탕집과 굴국밥집 등 1만원 이하의 식당들은 예약자들로 붐볐다. 의원실 관계자들이 함께 식사할 경우에는 '더치페이'를 했다. 국회 구내식당은 법 시행 일주일 전부터 평소보다 이용객이 급증한 상태다.
각 기관 김영란법 담당자, 홍보부서들은 말 그대로 '멘붕(멘탈 붕괴)'이다. 법 시행 일주일여를 앞두고 정부세종청사에서는 '대변인실 직원과 출입기자 간에 직접적 직무 관련성이 있어 김영란법에서 허용되는 3만원(식사비), 5만원(선물비), 10만원(경조사비) 이하의 비용조차 지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와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권익위가 부랴부랴 "원활한 직무 수행 등의 목적으로 3만원 이내의 식사 제공 등은 가능하다"고 해명한 뒤에도 찜찜함은 계속 남았다. 한 정부부처 감사담당관은 "권익위에서 김영란법 관련 매뉴얼을 내놨고 각 부처별로 교육을 하지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대비는 미흡한 게 사실"이라며 "권익위 유권해석도 판례가 없는 가운데 매뉴얼대로 풀이만 해주는 거라 명확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대외기피증 걸린 공무원들= 28일 0시를 기해 공무원들은 외부인과의 교류를 사실상 전면 중단했다. 김영란법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소위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옷을 벗어야 할 것이라는 경계심이 팽배하다.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한 고위공무원은 "공무원들이 자기 봉급 써가며 업계나 민원인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쫓아다니겠느냐"며 "지금은 '나중에 보자'는 말만 주고받고 있다"고 전했다.
공직사회가 대외기피증에 빠지면서 소극행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C장관은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보신주의에 빠져들지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고 전했다. 특히, 중앙부처의 세종시 이전 이후 업무생산성과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졌고, 민간과의 접촉마저 끊기면서 생긴 '갈라파고스'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급기야 황 총리는 27일 국무회의에서 "공직자들이 오해소지를 차단한다는 생각으로 대민 접촉을 회피하는 등 소극적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직무수행을 독려해 달라"고 주문했다.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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