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원피스 입은 소녀가 꽃노래를 부른다 꽃노래에서 소녀 2가 태어나고 꽃무늬 원피스는 점점 작아진다 꽃무늬 원피스에서 파란 새가 날아들고 흰 눈이 내린다 눈, 물이 딱딱한 공장 기계에 닿으며 소녀 3이 태어난다 꽃무늬 원피스는 꽃, 꽃, 꽃을 피우며 꽃보다 더 향기로워진다 꽃무늬 원피스를 찢고 소녀 4가 걸어나온다 소녀 4는 이미 죽어 있다


죽은 눈동자에서 죽은 심장을 가진 순록이 태어난다 뿔이 없는, 발자국에서 무, 방, 향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엄마 그림자만 눈, 속에 판화처럼 찍힌다 침염수림 사이에서 순록은 찔리고 찔리고 찔리고…… 붉은 피를 쏟아 낸다 차가운 공장 기계음 사이로 발굽이 달려간다 마른 풀을 찾아 킁킁거리는 그림자 뒤로 라프족의 눈초리가 등에 박힌다

단칸방에서 엄마 속의 엄마 속의 엄마가 웃으며 소녀들을 기다린다


[오후 한詩] 마트료시카/권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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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에 대한 시가 아니다. 이 시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부른 "꽃노래"에 대한 시가 아니다. 이 시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점점 자라나는 만큼 작아지는 "꽃무늬 원피스"에 대한 시가 아니다. 이 시는 "꽃, 꽃, 꽃을 피우며 꽃보다 더 향기로워진" 어떤 소녀에 대한 시가 절대 아니다. 이 시는 그렇다고 "순록"이나 "순록"을 키우며 일생을 사는 "라프족"에 대한 시도 아니다. 이 시는 말이다, 이미 '죽은 소녀'에 대한 시다. 태어날 때부터 "차가운 공장 기계음 사이"에서 죽어야 할 운명인 그런 소녀에 대한 시다. 그리고 그 소녀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에 대한 시다. 끔찍하고 참담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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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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