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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의 청경우독(晴耕雨讀)]족벌 파벌 군벌 그리고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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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재벌의 탄생과 성장 이야기
-적산불하, 특혜, 권력유착, 독점, 문어발확장, 갑질 관점서 접근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37년 동안 해운업을 영위하며 국내 1위 해운사로 성장한 한진해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채권단은 1조원 이상의 혈세를 쏟아 붓고도 한진해운에 사실상 사망신고를 내렸고, 모든 공은 법정관리를 지휘할 법원으로 넘어갔다. 수십 년 동안 해운업계에 업력을 쌓아온 한진해운이 순식간에 '밑 빠진 독'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진해운은 앞으로 대우그룹, 한보그룹 등과 함께 이른바 재벌의 '흑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 회사의 이전 수장이었던 최은영 회장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에 들어가기 직전 자신의 주식을 내다팔아 미공개이용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데 이어 20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빼돌린 혐의까지 추가돼 현재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 년째 이어온 해운업 불황을 목도 하고도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방관해 온 정부의 무책임함도 부끄러운 역사의 한편을 차지할지 모른다.
해운업계는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사에 사망선고를 내린 채권단의 결정에 반발했지만 그간 보여준 정부의 무책임함은 재벌 총수를 견제하지 못할 만큼 무뎌졌고 이미 회복불능 상태에 놓여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회사가 기울어가는 와중에도 재벌 총수가 자기 몫을 챙기는 동안 해운산업 경쟁력은 추락했고, 재벌 총수의 실기는 결국 투자자들과 수천 명의 애꿎은 직원들의 몫으로 남았다.

옳은 일보다 이익이 되는 일에 천착해 있는 탓에 재벌과 그들이 소유한 기업에 대한 비판은 어느 순간 케케묵은 소재로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간간이 나오는 재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파장력을 갖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더 많다. 열린 공간에서 독일식 대타협, 미국ㆍ일본의 지배구조 개혁 등 깊이 있는 토론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의 수사가 끝나고 혐의가 확정돼야 그나마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정도다. 더욱이 재벌과 관련한 서적은 대부분 창업주와 살아있는 권력의 성공신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 반대에 있는 불온서적(?)은 지나치게 어렵다.

답답함이 극에 달할 즈음 서점에서 무심코 책 하나를 집었다. 제목은 '툭 까놓고 재벌' '그토록 숨겨두고 싶었던 대한민국 재벌의 탄생과 성장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 이동형은 한국의 재벌과 재벌기업을 적산불하, 특혜, 권력유착, 독점, 문어발확장, 갑질, 골목상권 점령 등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재벌의 탄생과 성장에 얽힌 날것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기업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은 사라진 대우그룹과 명성그룹 그리고 국제그룹 해체의 뒷이야기도 책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발적인 물음으로 시작한다. 외국에도 대기업이 많은데 왜 유독 한국에서 대기업만을 '재벌'이라며 다르게 설명할까, 한국의 재벌은 예외 없이 전문분야와 무관하게 이렇게 문어발 확장을 하는 것일까, 재벌은 왜 회사를 '자기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은 복잡한 이론과 수사가 아닌 직접 찾은 자료를 비롯해 당사자(재벌 총수)와 관찰자(측근)의 진술을 기초로 했다. 다시 말해 이해하기 쉽고, 공감이 빠르다. 재벌의 숨은 뒷이야기를 폭로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당시 주변의 정치적 상황과 재벌 총수의 행보, 기업의 성장과정을 극적으로 재조합해 설득력도 갖췄다. 나아가 자칫 이념갈등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도 일련의 사실과 사건을 꼼꼼하게 나열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했다.

직접 찾은 자료·진술 바탕
부실한 출처·진부한 결론은 아쉬워


하고 싶은 주장은 뒤에 주로 담았다. 사람은 물론 시설이나 설비에 투자할 돈을 부동산에 묻어두고 불로소득을 취하는 재벌, 근로자의 삶의 질보다 낙수효과라고 포장해 기업의 성장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재벌, 각종 세제혜택을 받고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재벌, 20년 전(노동법 파동)과 다를 바 없이 근로자 인건비를 줄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재벌, 소유와 경영을 여전히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재벌에 대한 생각을 간결한 문체를 사용해 압축해서 풀어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인 1959년,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이 작성해 상원외교위원회에 제출한 '콜론 보고서'는 한국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말한 한국의 미래가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내용은 섬뜩할 만큼 적확하다. 반세기 전에 내놓은 분석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물론 재벌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기여도가 적지 않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젊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또 양심이라는 것을 지키는 사람은 전부 소외되거나 배척되고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만 출세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한국사회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한국경제 전체의 0.00006%에 해당하는 소수지만 80% 이상의 이익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주체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대기업'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진술과 증언 자료의 출처가 꼼꼼하게 기재돼 있지 않아 추가로 탐색하기 어렵고, 다소 진부한 결론 탓에 서둘러 책을 마무리한 느낌이다. 또한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종학씨가 추천사를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괜한 정치적 편견으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뜻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툭 까놓고 재벌

툭 까놓고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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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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