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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마음이 추운 날엔 어린시절 사진을 꺼내보세요

최종수정 2016.07.18 10:37 기사입력 2016.07.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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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작가·강연가

김수영 작가·강연가

강연을 마칠 무렵이었습니다. 무거운 표정의 60대 남성이 저를 붙잡고 조심스레 물어보시더군요. 제 또래의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이래저래 일이 안 풀린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리며 몇달째 집에만 쳐박혀 있다고. 자기는 분명히 딸을 위해서 몇십 년을 희생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돌아오느냐고 참담한 표정으로 말이지요.

 청춘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인터넷방송 <언니 TV>를 진행하다 보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요. 한 사람의 자존감은 그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6년간 받은 눈빛들의 합이라고 하는데 멘탈이 약한 분들 보면 어린시절 사랑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영유아기는 공사로 치면 기초공사 기간이거든요. 건물 짓고 나서 보면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지만 부실공사를 했다면 지진이나 다른 외부자극에 쉽게 무너질수 있죠. 그래서 겉으로는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사람도 어린 시절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면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아무 생각 없이 보낸 차가운 눈빛 한 번에 마음이 뿌리채 뽑힌 듯 힘들어져요.
[여성 칼럼] 마음이 추운 날엔 어린시절 사진을 꺼내보세요

 저 역시도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참 많아요. 한번은 넓은 공터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데 지나가던 택시가 초등학생인 저희들이 비켜주지 않는다고 '니네는 애미애비도 없냐?' 하고 소리를 질렀죠.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화를 내며 회초리를 들었죠.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왜 맞아야 하는지 억울했던 저는 이와 비슷한 사건을 몇 번 더 겪고 나서 엄마가 나만 미워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그리고 이런 경험을 저만 한건 아닌가봐요. 청소년의 절반이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어린 시절 앨범을 정리하다 깜짝 놀랐어요. 엄마 아빠가 우리 형제를 좋은 곳도 많이 데려가고 이쁘게 꾸며줄려고 애썼구나… 그런데 왜 제 기억들은 그토록 아프고 불행하기만 할까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내면아이 치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어린시절의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참가자들이 가져온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서 함께 봤는데 다들 어쩜 그리도 예쁘고 행복해 보이는지 본인들도 깜짝 놀라시더라구요.

 물론 이 세상에는 인격이 미성숙하거나 무지해서 아이를 자기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고 학대하는 부모님들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우리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어요. 생각해봐요. 갓난아기를 며칠만 방치하면 죽는데 우리 이렇게 건강하게 살았잖아요. 하고 싶은 거 대부분 하고 살아 왔잖아요. 거기에는 누군가의 수많은 희생이 있었어요.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요.

 절 붙들고 물어보셨던 그 60대 남성분처럼 부모님들 입장에선 억울할지 몰라요. 자식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온갖 궂은 일을 했는데 왜 자식들이 고마워하기는커녕 원망만 하는지… 아이는 어른이 아니라서 그래요. 부모 입장에선 99번 참고 1번 혼냈어도 자식입장에선 99번 부모가 참은 것보다는 1번 혼낸 것을 기억한답니다. 혼나는 순간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세포에 강렬하게 맺히고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왜곡되니까요. 왜 혼났는지, 부모가 무엇을 가르치려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고 부모가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했다는 느낌이 쌓여가죠. 사랑받은 기억이 충분하지 않을수록 더욱 더.
 아직 자식이 품안에 있다면,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면 더 늦기 전에 서로의 마음 속 앙금을 털어놔봐요. 많이 아팠다고 많이 미웠다고, 용기내서 말해봐요. 아마 상대방도 나름의 아픔이,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거에요. 지금이라도 그 마음 알아주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된답니다.

 만약 그럴 기회가 없다면 용서해요. 그분들도 몰라서 그랬어요. 엄마아빠 노릇이 처음이라서, 사랑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몰랐을 수 있어요. 그들을 원망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커 준 스스로를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어봐요. 상처 없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다가 내가 자식 낳으면 제대로 잘 가르치고 사랑으로 키우면 되는 거에요. 그렇게 아픔의 고리를 끊고 사랑의 대물림을 시작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추운 날엔 어린 시절의 사진을 꺼내 보세요. 그 사진들이 말해줄 겁니다. 당신은 사랑받고 자랐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김수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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