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화가 천경자는 진흙탕에서 핀 연꽃처럼 자신의 비극적 슬픔을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불행한 사건들을 경험하면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화가로서의 꿈을 실현했다."(7pg)
고 천경자 화백의 평전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이 출간됐다. 저자는 미술평론가 최광진씨(54)다. 그는 1995년 열린 호암미술관 '천경자 전'을 기획하며 고인과 만났다. 천경자의 초기 작품부터 평생의 역작을 한 데 모은 대규모 전시회였다. 최씨는 이후 천경자 연구에 매달려왔다. 대표적인 '천경자 전문가'로 불린다.
천경자는 '불행한 생애'를 산 '행복한 예술가'였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일본에 유학한 그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집안이 몰락해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결혼에 두 번 실패하고 두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녀 넷을 부양해야 했다. 1991년 '미인도' 사건 탓에 국립현대미술관과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자신의 작품도 몰라보는 정신병자로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천경자가 '행복한 예술가'인 것은 그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천경자는 자신의 슬픔과 한을 아름다운 환상과 대립시키며 신명나는 그림을 추구했다.
저자는 기구한 운명을 그림에 진솔하게 녹인 대목에서 천경자와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의 공통점을 찾는다. 반면 프리다가 자신의 고통을 관조하고 객관화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찾는다.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천경자의 생활은 점차 안정됐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깊은 고독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창작 동기가 약화되고 환상의 원천이 고갈돼감을 느꼈다. 천경자는 화가로서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약 30년 동안 2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후반기 화풍을 이어갔다. 이 시기 풍물화들은 대지의 건강한 생명력과 강렬한 빛을 반영한다.
미술품의 위작시비는 대개 작가 사후에 일어난다. 하지만 일찍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천경자는 이른 시기부터 위작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1991년 '미인도' 사건은 작가가 절필을 선언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작가와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미술관의 싸움이었다. 화랑협회 등 전문가들은 미술관의 손을 들어줬지만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미인도에 대한 미학적 감정을 시도했다. 미학적 감정이란 작가의 미학과 작품세계를 기준으로 그림의 진위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는 색채(강렬하다/힘이 없다), 꽃(경쾌하다/투박하다), 안료(굵다/곱다), 제작기간(3~4개월/3~4일) 등 열 한 가지 부분에서 발견되는 차이를 근거로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최광진 지음/미술문화/1만8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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