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를 '주식'아닌 '자식'으로 봐"…어느 조선사 사외이사의 토로
이사회가면 박수만 치고 끝나
투자한다고 한 것이 증권사 인수
대기업, 덩치키우기에만 혈안
위기관리·구조조정에 취약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조선사 사외이사 이사회에 가면 박수치고 끝나기만 했다. 결의를 한 적이 없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한 조선사의 사외이사를 했던 A교수의 회고다. 그는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업에 대한 경제전망이 밝았고, 돈을 잘버는데 현금을 쌓아놓기만하고 투자를 안한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말했다.
A교수는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투자를 한다고 해서 봤는데 증권사를 산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투자를 한다고 했고 사업타당성도 있어서 찬성을 했는데 지금 와 보니 구조조정 여파로 반값에 매물로 내놓는다고 한다. 지금 와서보니 그때 사외이사로서 의사결정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A교수는 당시만 하더라도 경기상황상 조선업이 꺾일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당시 조선업 물동량이 사이클상 하강하고 있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잘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짙었다. 바닥을 찍고 회복기가 도래한다는 전망이 다수였다. 정부나 여러컨설팅 기관이 조선업의 턴어라운드를 전망했다.
A교수는 사외이사로 지내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실기하는 이유를 지나치게 자회사에 집착하고 그룹을 키우는데만 집중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집단들이 지나치게 몸집불리기에 관심이 많고, 부실이 생긴 자회사를 파는 구조조정을 소홀히하는 측면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이 자회사를 '주식'이 아니라 '자식'으로 보는 관점이 구조조정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기업은 자식이 아니라 주식인데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파느냐라고 생각하다가 다같이 부실해지는 사태가 빈번히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자회사가 부실하면 결국 임직원과 채권기관의 부채로 이어진다는 관점을 갖게되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수비수'보다 '공격수'의 역할만 한다는 것도 비판했다. A씨는 "어떻게보면 투자를 하고 기업을 크게 확장하는 포지션이 공격수라고 치면 기업이 꺾어졌을 때 수비수가 돼 축소하고 자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기업들이)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A씨는 잭 웰치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GE)의 잭 웰치처럼 공격과 수비간의 명확한 분업체계를 만들어 자회사가 잘 못하면 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산업은행의 역할도 공격과 수비를 분리해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A교수는 "산은이 예전에는 일시적으로 기업이 안좋아질 때 재무재조정을 해주면 알아서 회생하는 구조였는데 요즘은 그런 과정만을 거쳐서 기업이 살아나기 힘들다"면서 "구조조정 담당부서와 집행조직을 나눠 산은 역할을 과감히 구분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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