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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쓰는 이의 형벌

최종수정 2020.02.11 13:59 기사입력 2016.05.1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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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우리나라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더 큰 상에도 손색이 없는 작가입니다. 이번 수상작은 '채식주의자'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년이 온다'가 더욱 강렬하게 기억됩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기억되기 위해 씁니다. 그러나 모든 글 짓는 이들에게 기억은 축복과 동시에 저주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책으로 꼼꼼히 기록된 글뿐 아니라 짧은 글도 영원히 기록되고 기억됩니다. 인터넷이라는 무한 기억두뇌 덕분입니다. 검색 한 번이면 수십 년 전의 글도 바로 '소환'됩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끔찍한 희생에 대해 국민 모두가 알게 된 지금, 한 화학자의 몇 년 전 글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금 그 누구보다도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함을 비판하고 있는 그는 기실, 정부가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무렵 그것이 비과학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판매금지는 진행되었고, 따라서 그의 글들이 어떤 현실적인 악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지만 지금과 당시의 논조를 비교하면 씁쓸해지는 대목이 좀 있습니다.
최근 로스쿨 입시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사시존치 주장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을 이끄는 법학자들 가운데 과거 로스쿨 도입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던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서 발견된 문제점들로 인해 입장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한때는 도입을 앞장서 주장하고 이제는 폐지를 주장한다면 적어도 그러한 변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상상도 하기 힘든 거액의 수임료와 광범위한 로비의혹으로 얼룩진 이른바 전관파동의 한 중심에 선 변호사가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문학판사'라고 불리면서 좋은 글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 특히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만족감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용의 글로 법원으로부터 문예상을 받기도 했다는 소식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런 글을 믿고 그에게 찾아간 의뢰인들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듭니다.

문학판 언저리를 배회하던 시절, 존경하던 작가를 만난 다음 글 값에 크게 못 미치는 인품에 놀라고 상처 입은 적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좋은 글이 반드시 좋은 사람에 의해서만 쓰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해 쓴 글은 사회적 파급효과라는 점에서 문학작품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의사결정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쟁점들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쟁점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전문가로서의 판단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이들이 사실을 부분적으로 설명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바꾼다면, 사회적 합의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습니다. 4대강, 광우병, 세월호,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문제들 앞에서 우리 사회가 심각한 갈등을 겪은 데에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내놓은 말과 글이 다른 요인에 의해 오염되었던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라기보다는 특정한 이익집단의 대변자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혀 믿고 싶지 않지만,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연구가 조작되었다는 설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전문가의 타락을 상징하는 엽기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도 이런 반성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키보드를 누른 일이 없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이제 모든 글은 영생을 얻을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쓰는 자는 기억이라는 형벌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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