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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양산박 김수진 연출 "재일교포 3세, 내가 누군지 연극으로 찾고있다"

최종수정 2016.03.18 12:01 기사입력 2016.03.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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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연출가(사진=임온유 기자)

김수진 연출가(사진=임온유 기자)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왜 귀화 안 합니까?"

연출가 김수진(62)이 일본인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그는 재일동포 3세로, 극단 ‘신주쿠양산박’을 이끌고 있다. 이렇게 응대한다.

"나는 김해 김씨고 우리 뿌리는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일동리 482…."

신주쿠양산박이 한국을 찾았다.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도라지'를, 23일부터 25일까지 '백년, 바람의 동료들'을 공연한다. 장소는 왕십리역 광장, 무대는 배우와 스태프가 손수 지은 대형 텐트다. 관객 600명이 들어간다. 지난 16일, 이틀째 텐트 공사가 한창인 그곳에서 김 연출을 만났다.

물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으신 건가?" 그는 "아니다"라고 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한국이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이다."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집안에서는 한국말만 쓴다. 어릴 적 무심코 일본말을 내뱉으면 아버지는 용돈을 끊었다. 김수진은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아들과 딸의 이름도 '진수', '세나'로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당당히 터를 잡고 살길 원한다. 스스로를 "일본 대표로 문화를 알리러 온 한국사람"이라고 했다.
왕십리역 광장에서 한창 공사 중인 텐트(사진=임온유 기자)

왕십리역 광장에서 한창 공사 중인 텐트(사진=임온유 기자)


그는 셈하기 어려운 복잡한 경계에 선 사람처럼 보인다. "내 자리가 항상 이렇다.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아니다. 이 텐트 같은 거다. 어디에 발붙이지 않고 떠돌지 않나. 있다가도 없고. 난 누구인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연극을 통해서 끝없이 찾고 있다."

연극의 길로 접어든 건 우연이었다. 규슈 도카이 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그는 재일동포들이 민청학련 사건에 휘말린 소설가 김지하(75)를 구명하기 위해 올린 연극 '진오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작품은 김지하가 농촌계몽용으로 쓴 희곡이다.

그 길로 일본 현대 희곡의 대가 가라 주로(76)가 이끄는 극단 ‘상황극장’을 찾아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상황극장은 실험적이고 사회성 짙은 일본 연극 '앙그라'(언더그라운드)의 계보를 잇는 극단. 김수진은 1985년 소설가 황석영(73)이 마당극 '통일굿' 대본을 들고 일본에 간 일을 계기로 1987년 6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59), 배우 고 김구미자 등 재일동포 연극인들과 함께 신주쿠양산박을 만들었다.

신주쿠양산박은 여전히 가라 주로가 쓴 연극을 공연한다. 김 연출은 가라 주로의 작품에서 그의 삶을 본다. 작품 속 주인공은 보통 엄마 뱃속에서 5개월에 낙태된 아이들이다. 이들은 한쪽 팔이 없거나, 한쪽 눈이 없는 온전하지 못한 모습으로 장구와 북소리에 맞춰 공옥진의 ‘병신춤’을 춘다. "나 역시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부터 낙태된 사람이다. 나와 상황극장의 연극 철학은 이렇게 맞닿아 있다."

도라지(사진=신주쿠양산박 제공)

도라지(사진=신주쿠양산박 제공)


'도라지'는 구한말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 그를 암살한 홍종우의 좌절과 절망을 그린 작품이다. 1994년 극단 목화의 오태석(75) 작가가 썼다. "일본 냄새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배척됐다. 2007년부터 신주쿠양산박이 공연해왔다. 능지처참된 개화파 김옥균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엇갈린다. 신문물을 도입해 조선의 개혁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받는 동시에 '매국노', '친일파'라는 이름표가 붙기도 한다.
일본에서 김옥균은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난 뒤 일본에 있는 작은 섬 오가사와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 그의 묘 앞에는 늘 꽃이 놓여 있다고 한다.

김수진은 “‘도라지’는 한ㆍ일 간 우정의 이야기다. 그가 북해도에서 쓴 글씨가 있는데 지금 그 가치가 10억원이다. 재미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일본의 배신 때문에 개혁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봉건주의 사회를 민주주의로 이끌려고 한 사람"이라고 했다.

한ㆍ일 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등 오래된 역사 문제 때문에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틈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저 모든 것을 떠나서 왔다 갔다 하며 재밌게 연극을 하려고 한다. 지루하면 안 된다. 역사를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백년, 바람의 동료들'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다. 재일동포들이 오사카의 작은 선술집에서 치열했던 100년의 역사와 삶을 뒤돌아본다. 그는 "이 작품을 쓴 조박 작가는 가수이기도 하다. 그의 '백년 전'이라는 12분짜리 노래를 듣고 '아, 이거다. 우리 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3세대나 살았는데 남은 건 불복종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백년, 바람의 동료들(사진=신주쿠양산박 제공)

백년, 바람의 동료들(사진=신주쿠양산박 제공)


'식민지로부터 해방돼 희망에 넘친 나날들이 6.25 전쟁으로 다시 절망이 됐다.' 김 연출은 막걸리를 만드는 ‘아재’ 역으로 출연하는데 "이 대목에서 항상 눈물이 난다"며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려 갈등하듯 재일동포들도 서로를 할퀴었다. 가난한 누군가는 '천리마 달린다'는 북한의 노래가 멋져 보여 그곳으로 떠나기도 했다. 김수진은 “북한에 간 친구들 많았다. 일본에서는 직업의 자유도 없고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하니까. 곧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속은 거였다"고 했다.

이 작품 속 '숙부의 편지'는 재일동포들이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억압 속에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북한으로 먼저 떠난 숙부는 조카에게 '연필'로 쓴 편지를 보낸다. '이곳의 생활은 검소하지만 걱정 없다. 병원, 음식, 학교 모두 무료다. 인민이 사회와 국가의 중심이다.' 편지를 받은 조카는 눈물을 왈칵 쏟는다. '만약 편지가 잉크로 쓰였으면 북한으로 오고 연필로 쓰였으면 오지 말라'고 한 숙부의 말이 떠올라서다. 김수진은 "이 작품을 통해 식민지가 끝나고 해결되지 못한 '우리'가 있다는 것을 한국인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내년이면 신주쿠양산박 창립 30주년이다. 3월에 '바람의 거리'라는 작품을 올리기 위해 기획 중이다. 김수진은 "모든 것은 순환해야 한다. 문화도 바람도 다 그렇다. 하지만 남과 북 사이에 ‘38선’이 있고 한국과 일본 사이 독도가 있어서 그 바람이 막히고 있다. 이 작품에는 문화인으로서 우리가 바라는 10년 뒤, 100년 뒤, 1000년 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의 모습을 담으려 한다"고 했다. 가야금, 아쟁,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도 함께 할 생각이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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