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u-clous' 1971년,  50 x 50 cm(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Tableau-clous' 1971년, 50 x 50 cm(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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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온통 진한 붉은색 유화물감을 칠했다. 그 위에 못이나 이쑤시개처럼 얇고 긴 나뭇조각이 빽빽하다. 숟가락이나 포크로 눌러 일정한 패턴을 새기기도 했다. 은빛 알루미늄 패널 위에 색을 칠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성냥을 촘촘히 박기도 했다. 한편엔 단색(검은색) 회화가 붉은색 그림과 나란히 걸렸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오베르탱(Bernard Aubertin, 1934~2015년)의 작품들이다. 그는 붉은색 모노크롬(한 가지 색만을 쓰는 회화)의 대표 작가다. 그의 작업은 붉은색 그림에 이어 화면 위 빽빽하게 꽂은 성냥에 불을 지펴 태우는 퍼포먼스, 그리고 검은색 모노크롬으로 확장됐다. 붉은 화판 위에 나열된 못이나 나뭇조각, 물감 덩어리의 흔적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붉은색만큼이나 강렬한 에너지를 표출한다. 작가는 생전에 "(화면에)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오베르탱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레드페인팅 시리즈와 금속 화판위 나무조각을 꽂은 형태의 '타블로 푸'(Tableau feu), 검은색 모노크롬 회화, 과거 작가의 퍼포먼스 자료들을 전시했다.


붉은색은 피나 불을 연상시킨다. 그 붉은 색의 모노크롬. 오베르탱의 붉은 그림은 에너지, 환경, 삶, 죽음을 동시에 내포한다. 그의 작업들을 이야기할 때 1960년대 독일에서 활동한 아방가르드 예술단체 '제로 그룹(ZERO Group)' 빼놓을 수 없다. 제로 그룹은 유럽 전역의 젊은 작가들로 구성된 미술가 집단이었다. 이 단체는 세계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에 상응하는 예술적 언어와 전략을 위해 '백지상태'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빛, 구조, 율동과 같은 비물질성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캔버스 표면을 찢거나 불태우는 등 파괴적인 물리적 행동을 가함으로써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회화를 구사했다.

베르나르 오베르텡 (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베르나르 오베르텡 (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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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20대부터 작가활동을 시작한 오베르탱은 동시대 청년작가들과 새로운 실험정신을 공유했다. 특히 제로그룹의 또 다른 일원이었던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1928~1962년)이 1957년 독일 쉬멜라 갤러리 전시에서 선보인 파란색 모노크롬 회화는 오베르탱 뿐 아니라 동료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브 클라인은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KB)'라는 색으로 특허를 받은 작가이며 전위적인 행위예술로도 널리 알려졌다. 오베르탱이 마주한 모노크롬 회화 속 색상은 '파란 하늘과 같은 파란색'이란 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추상적 감정과 존재의 의미를 재탐색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붉은 색을 선택하면서 "붉은색은 그 자체에 내재된 빛을 통해 추상적 감정을 극명하게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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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u feu', 2009년, 76 x 56cm (리안갤러리 제공)

'Tableau feu', 2009년, 76 x 56cm (리안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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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야외에서 장브롤리갤러리 대표가 오베르텡이 과거 보여준 불 피우는 퍼포먼스를 재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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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계기로 방한한 프랑스 파리의 장브롤리갤러리 대표 장 브롤리씨(75)는 "그 당시 젊은 작가들은 피카소의 분석적 회화 등과 같은 진부한 방식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미술을 지향했다. 지금은 단색의 그림, 모노크롬이 하나의 테크닉으로도 보이지만 그 시대 유럽의 모노크롬 회화는 예술 운동이었다"고 했다. 그는 미술품 컬렉터였으며, 지난 2002년 갤러리를 세웠다. 십 오년 전 오베르탱을 소개받아 그의 작품들을 모아왔다.


오베르탱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2012년 파리의 '팔레드 도쿄'에서 불을 이용한 퍼포먼스와 회화를 선보였으며 지난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제로그룹 전시(제로, 1950~60년)에도 참여했다. 미국 플로리다 노턴 박물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리옹 현대미술관, 독일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 루드비히 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이번 전시는 4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리안갤러리에서 열린다. 02-730-2243.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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