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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한남동 68억짜리 건물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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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그들, 버티는 그들…서울 도심 '젠트리피케이션'의 풍경


사진 = 한복 차림으로 서울 도심 관광 중인 관광객

사진 = 한복 차림으로 서울 도심 관광 중인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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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만세!” 광복 71년, 삼일절을 맞아 서울 한복판서 울려 퍼지는 고성에 시간 감각이 흐려진다. 한복을 입고 분주히 종로 거리를 오가는 소녀들의 해사한 웃음에 행인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그녀들의 웃음에 홀려 연분홍 치맛자락 뒤를 졸졸 따라 걷다 멈춰선 막다른 골목에 죽 늘어선 한옥을 보노라니 오늘 이 분위기는 영락없는 시간 여행이다. 낙원상가 뒤편에 섬처럼 떠 있는 한옥지구는 행정구역상 익선동으로, 2004년 재개발 바람에 몽땅 철거될 뻔했으나 주민들의 분투로 오늘까지 그 형태를 보존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다.


사진 = 익선동 골목

사진 = 익선동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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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소음에 벌떡
익선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166번지 일대는 이미 ‘메인 스트릿’이 된 지 오래. 한 집 건너 카페, 한 집 건너 식당, 이곳을 찾은 3월 1일 대부분의 카페와 식당은 ‘만석’ 안내문을 출입구에 붙여놓고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그 뒤로 길게 줄 서 있었다. 왁자한 인파를 헤치고 돈의동으로 가는 옆 블록으로 피신하자 고요한 주택가가 나온다. 중간쯤 자리 잡은 집 나무 대문에는 조그맣게 ‘월세 구함 200/30’ 메모가 붙어있다.

마침 집주인 아저씨가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대문을 열고 나온다. 진짜 방 가격이 200에 30이 맞느냐 물으니 귀찮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는 갑자기 바닥에 앉더니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양반들한테 달 방 내주고 살았는데, 요새 동네가 유명해지니 낮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시끄러워 그 사람들 다 나가버렸어. 나도 시끄러워서 지금 나온 거야”. 골목 끝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할머니도 슬그머니 다가와 거든다. “모처럼 쉬는 날이라 눈 좀 붙이나 했는데, 낮에 자긴 글렀지!”.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골목에 들어선다. 할머니와 아저씨의 한숨 위로 그의 경쾌한 트렁크 소리가 겹쳐 처마 위에 내려앉았다.

사진 =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전시된 STOP 싸이 포스터

사진 =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전시된 STOP 싸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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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싸이
한남동 꼼데가르송 거리는 가로수 사이로 지나다니는 차량을 제외하면 제법 한산한 길로, 유명 명품브랜드 매장을 비롯 젊은 예술가와 광고,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사무실과 작업실이 모여들면서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 2010년 문을 연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있다. 단순히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카페가 아닌, 동시대 작가들의 생각과 작업과정을 읽을 수 있는 복합전시공간으로 카페를 찾은 손님이 동시에 관람객이 되고, 입주 작가와 커뮤니케이션도 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주 업종인 전시나 카페가 아닌 건물주, 싸이 때문에 때 아닌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계약이 만료된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고 버티는 상황에서, 임차인은 재건축을 이유로 소송이 제기되어 비워주기로 했으나 당초 계획과 다르게 재건축이 무산됐으니 나갈 수 없다는 입장. 싸이가 매입한 건물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입주한 이후 건물주가 두 번 바뀌었고, 그 사이 건물의 가격은 30억에서 68억으로 치솟았다. 이전 건물주와 맺은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건물이 매각됐고, 이 과정에서 재건축을 이유로 명도소송이 제기되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건물주가 싸이로 바뀐 것이다. 싸이 측에 따르면 이 건물은 재건축 하지 않고 리모델링 후 프랜차이즈 카페 입점이 예정되어있었으나, 테이크아웃드로잉 측이 재건축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이를 전제로 한 조정은 무효임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둘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여기서 쟁점은 공간의 소유주가 누구고 법적 판결의 결과가 무엇인지였지 예술가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군 무형의 성과와 상징성은 배제되었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문화’는 법의 울타리에선 논의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를 놓고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적 피해자라는 지적과 법적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퇴거에 불응하는 것은 위법행위라는 상반된 의견이 오늘까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진 =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뉴욕 소호

사진 =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뉴욕 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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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위협하는 자본

전문용어로 쓰이던 ‘젠트리피케이션’이 지난해부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이 현재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까닭이다. 홍대, 대학로, 경리단길, 서촌, 연남동, 성수동 등은 이미 저렴한 임대료에 모여든 젊은 예술가와 특색 있는 상점이 그 지역에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면 인파가 몰려들고, 임대료가 상승하고, 기존의 입주자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면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카페와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서는 패턴으로 지역 정체성마저 훼손되는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한 지역에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 자제를 약속하는 ‘상생협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나날이 빨라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진행속도에 정책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 이렇게 임대료가 치솟고 기존의 입주자들이 쫓겨나면 지역이 갖고 있던 본연의 매력과 문화, 정체성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이내 평범한 번화가가 되어버린다.

런던의 첼시, 뉴욕의 소호, 베이징의 후통과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도심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비단 서울만의 고민이 아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대학로가 과거의 명성에 비해 얼마나 평범하고 밋밋해졌는지 그 지역 중심가에 자리 잡은 익숙한 간판과 풍경만 봐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지역의 특색과 상황, 특수성에 맞게 해결방법을 찾는 노력이 건물주와 임차인, 예술가와 지역주민 사이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말은 국제사회의 거창한 아젠다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역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당면과제이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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