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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실은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최종수정 2016.01.27 10:46 기사입력 2016.01.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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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책읽기 - 작가 샐린저 6년전 오늘 타계...'엉터리 세상을 향한 끝없는 청춘 조크'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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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늘 끼고다녔던 영문(英文)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고등학교에서 잘린 농땡이 데이비드 홀든 콜필드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성격이 비슷하다던가 상황이 닮았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심정적인 동류의식, 양심적인 불량끼. 그런 것들이 죽이 맞은 것이었다.

몇십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서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만나는 재미와, 많이 낯설어진 소설의 내면을 만나는 흥미로움을 함께 느낀다. 대학에선 왜 이 책을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로 선택했을까. 어쩌면 사소하기 짝이 없는 한 소년의 에피소드들을 늘어놓는 이 소설의 어디에서 미국 문학의 전범이나 미국적 삶의 핵심코드가 들어있다는 얘길까. 아마도 대학땐 할 수 없었던 질문을 뒤늦게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던지고 있었다.

한 동안 너스레를 떤 뒤에 콜필드는 잊어버렸다가 생각난 듯이 이렇게 말한다. "잊어버리고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난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런 엉뚱한 화법은 이 소설의 한 기분을 이룬다. 성적 불량으로 펜시고등학교에서 쫓겨난(홀든에겐 이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소년 홀든은 기숙사를 나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뉴욕을 방황한다. 그 사흘간의 방황기록이다.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났고 그 일들은 그의 소외감과 고독을 고조시키는 에피소드로 기능하고 있기에 읽으면서 이야기의 탄력을 느낀다.
홀든 콜필드는 대학 시절 내가 좋아했던 '위대한 개츠비'의 예찬론자다. 모든 영화를 따분해하고 연극을 시시해하지만, 그래도 곧잘 그 따분하고 시시한 것들을 보러간다. 그는 소설을 좋아한다. 저 개츠비와 같은 순수하고 애처로운 사랑의 코드를 좋아한다. 홀든 콜필드는 물론 허클베리 핀이란 또하나의 미국 소년의 원형과도 합류하지만, 최근 들어 폴 오스터의 주인공들에게도 피를 섞어준다. 특징은 미국적인 악의없음과 선량함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상태를 명쾌하게 설명해낼 순 없지만 어쨌거나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한 원칙을 지키려 분투하는 모습이 닮았다. 그는 엉터리 세상을 향해 끝없이 너스레를 내뱉었다. 청춘의 상처를 이렇게밖에 드러낼 수 없었던 그의 시대의 꽉 막힌 공기를 그 조크들로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퇴교를 당한 콜필드는 스펜서 선생을 찾아간다. 그는 콜필드의 성적표를 내놓으며 왜 잘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다만 작별 인사를 하러간 것일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는 매우 험악한 훈계를 듣는다. 그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온다. 투덜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소년은 이 선생에 대해 어떤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시작부분인데, 마침 소설의 끝부분에도 전에 다닌 학교의 앤톨리니 선생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아주 환대를 받았는데, 잠결에 앤톨리니 선생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느끼고는 '변태행위'라 생각하고 놀라서 나온다. 그런 뒤에 그냥 선생이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그런 행위를 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그에게 선생의 모습은 이렇듯 소통 불가능한 존재이다.

홀든의 부모는 말미에 잠깐 얼굴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변호사인데 거의 보이지 않고, 신경 날카로운 어머니가 잠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퇴학 당한 죄 때문에 어머니를 피해 도망가 버린다. 초반에는 홀든의 기숙사 생활 얘기가 펼쳐지는데, 여드름투성이의 애클리와 잘난척하는 스트라드레이터와의 갈등과 대화가 그 중심이다. 홀든은 이들을 미워하고 욕하면서도 실은 숙제를 대신해 주기도 하고 재킷도 빌려주며 대화를 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 엇갈린 감정의 병치는 홀든 콜필드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아주 효과적인 장치이다. 결국 자기의 옛 여자친구인 제인 갤러허를 만나고온 스트라드레이터와 한판 싸움박질을 하고, 밤중에 기숙사를 나온다. 그가 분개하는 건 단순한 질투심이 아니라, '순정'의 대상을 속물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친구녀석에 대한 그 나름의 반응이다.

기숙사를 나온 뒤 그가 기차와 거리와 택시와 식당에서 벌이는 '낯선 사람에 대한 말걸기'는 그의 고독감을 증폭시킨다. 기차에서 만난 아름다운 부인은 그가 다닌 고등학교의 한 친구의 어머니였다. 그는 그 친구를 아주 경멸하는 입장이었지만 그의 어머니에게는 아주 친절하게 대한다. 그리고 친구를 터무니없이 옹호하기도 한다. 그의 선의는 그녀가 친구의 어머니였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와 따뜻한 마음의 소통을 하고 싶은 욕망의 소산이었지 않나 싶다. 택시기사에게 겨울이 되면 공원의 오리들은 모두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서, 기사를 짜증나게 한다. 식당의 수녀들을 보고는 헌금까지 한다. 술집에서 술을 주문한 뒤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말하자, 금방 주문을 바꾼다. 그는 겁이 많고, 늘 투덜댄다.

호텔에서 한 창녀를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을 인상적으로 남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홀든은 벨보이의 유혹에 창녀를 사기로 했지만, 그녀가 들어오자 이야기만 나누자고 간청한다. 창녀는 "바보"라고 말하면서 돈을 받고 돌아간다. 그 뒤 벨보이는 처음에 자신이 말했던 것과는 달리 5달러를 추가로 더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홀든이 버티자 벨보이는 그에게 주먹을 한방 날린다. 이때 함께 들어온 창녀가 홀든의 지갑을 털어 5달러를 빼앗아 간다.

이후에 홀든은 자기가 좋아하진 않지만 얼굴은 예쁜(머릿속은 텅텅 비었다고 생각하는) 여자, 샐리를 만난다. 그러나 곧 말이 통하지 않아 다툰 뒤 헤어진다. 옛날 친구를 만나지만 그와도 몇 마디 말도 나누기 전에 그의 화만 돋우고는, 헤어진다. 아니 그 친구가 일방적으로 가버린다. 너, 왜 그러니? 하는 한심한 눈길만 그의 콧등에 떨궈놓고 말이다.

홀든은 추운 밤에 오리가 정말 공원 연못이 있는지를 확인하러 간다. 술이 잔뜩 취한 상태였는데 머리에 물을 끼얹고는 죽을 듯이 엄습해오는 한기를 느낀다. 그가 '변태선생'인 앤톨리니를 찾아가는 것은 이때다. 대학 시절엔 왜 홀든이 저 오리에 대해 저토록 궁금해했을까를 두고, 리포트의 주제로 삼았던 친구들이 많았다.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서 쫓겨난 홀든과 연못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오리와의 공감 때문이라는 평범한 분석을 아주 어려운 문자들을 섞어가며 쓴 논문들이 대부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존재에 대해 잊어버린 사각(死角)의 시간. 그 시간에 그 존재가 겪는 소외와 외로움이 바로 이 소설의 숨소리이다. 오리는 없었다. 정말 그것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학교와 집 사이에서 정작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홀든, 그와 단절된 세계의 무심과 병리.

홀든이 브로드웨이 거리를 걸어갈 때 한 아이의 노래를 듣는데, 거기에 나오는 호밀밭 얘기가 홀든의 귀에 담긴다. 피비는 나중에 그 노래가 로버트 번스의 시임을 일러준다. 그는 자신이, 놀고있는 어린 소년들이 벼랑으로 떨어지지 못하게 호밀밭둑을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자위한다. 이 얘기를 해주는 건 그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 피비에게다. 그는 이 동생이 보고싶어 몰래 집으로 숨어들어간다. 영민한 피비는 직감으로 오빠가 다시 퇴학당한 것을 알고 뾰루퉁해져서 말도 하지 않는다. 홀든은 그를 달랜다. 아빠가 오빠를 죽일 거야. 피비의 말에, 걱정하지마. 오빠는 서부로 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살 거야,라고 허황된 대책을 내놓는다. 이쯤에서 홀든과 피비의 인상적인 대화가 나온다.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런 말 하지마.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
"오빠가 싫어하니까. 학교마다 싫다고 했잖아.오빠가 싫어하는 건 백만가지도 넘을 거야, 그렇지?"
"그렇지 않아.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네가 틀렸어."
"그럼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봐."
"한 가지? 내가 좋아하는 것 말이지? 좋아."

이렇게 대답한 뒤 홀든은 대답을 찾지만 잘 찾을 수가 없다. 수녀들이 생각나고 자살한 제임스 캐슬이란 친구가 생각났지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긴 좀 그랬다. 피비는 대답을 재촉했고, 그는 엉겁결에 죽은 동생이 앨리를 얘기해버린다.

"앨리오빠는 죽었어. 오빠는 늘 이런 말만 해."
"그 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래도 좋아할 수는 있는 거 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는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것 아니야?"
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지금도 좋아. 지금 이 시간 같은 거 말이야. 너하고 여기서 얘기하고..."

이튿날 피비를 학교 부근에서 다시 만난 홀든은 동생이 큰 가방을 들고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피비는 학교를 그만 두고 오빠를 따라 서부로 가겠다고 말한다. 이 당혹스런 결정에 홀든은 "절대로 서부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번복한다. 그리고는 학교를 땡땡이친 동생 피비와 회전목마를 탄다. 이 장면이 끝장면이다. 이후에 홀든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거기서 이 사흘간의 오디세이를 적고 있다. 한 소년의 입사식(入社式)으로 읽히기도 하는 이 소설에는 녹녹찮은 세상에 대한 비판과 기성세대에 대한 항의가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의 원문에는 욕설과 구어체가 가득 차있었다. 이 소설의 매력은 그 '감성의 날것'을 즐기는 것에도 있지 않았나 싶다. 솔직함과 변덕스러움, 그리고 하염없는 선량함과 겁많음까지를 갖춘 미국적 기분들의 나프탈렌같은 휘발을,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 느낀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1919?2010년)의《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은 발간과 동시에 1950년 젊은 세대의 경전이 되었다. 전후 세대가 느꼈던 좌절과 울분을, 이 소설은 속 시원히 드러내줬다.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뒤 샐린저는 1961년 9월 15일자 《타임》지 표지모델로 선정된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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