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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본군'콤플렉스와 위안부 문제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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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책읽기 - '제국의 위안부' 샅샅이 읽기(4)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박유하는 그녀의 책 '제국의 위안부' 속에서, 위안부와 일본군 간의 관계의 다른 면모를 다양한 증언과 예화로써 제시한다. 말하자면 '위안부의 비극'이라는 개념적 구도를 전복(轉覆)하려는 '그녀스러운 방식'이다. 우선 인용들을 만나보자.

"오랜 주둔생활 기간에 같은 위안부들과 지내다 보면 부인 같은 느낌이 되는지 군인들도 그렇게 허겁지겁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은 않게 됩니다. 언제라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분위기였지요. 그래서 그녀들은 주둔부대의 일원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또 장식품이라고 할까. 위안부가 없는 주둔부대는 과자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처럼 폼이 안 난달까.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군인들은 그녀들을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 위안부들도 그에 부응해서 휴일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선물을 가지고 와서 빨래를 해주거나 진지 옆에서 기관총을 손질하는 군인 옆에서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거나 꽃을 꺾거나 하기도 했는데,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노래하니 평화로운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군인들도 (위안부들에게) 점심을 먹이거나 하고 있었습니다."(센다의 책 65,66쪽, 박유하의 책 56쪽)
"간호원도 배운다고 배왔지. 미국 사람이 뭐시가(비행기가) 오는 거 같으면 총도 맞추면 이것 배우고, 이것저것 배우고 호다이(붕대)를 갖다가 어디 맞으면 어떻게 감으라 카는 거 그거 연신 배와주고 놀 여개가 없어요."(진상규명위 자료, 박유하의 책 57쪽)

"거기가 일선이라도 군인들 큰 전쟁 나가서 돌아오면 기모노 입고 에프론 하고 고쿠로사마시타(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보통 때는 몸뻬 입고 안 그러면 스카트 같은 거 입고, 기모노는 겨울거 여름거 봄거, 도시 가서 돈 주고 사야지. 인기까이(연예회, 파티)같은 거 하거든요."(진상규명위 자료, 박유하의 책 57,58쪽)

"즐거웠던 일은, 글쎄요. 내 경우에는 역시 시코쿠 사람을 만났을 때였어요. 그것도 아이치라든가 마쓰야마라든가, 고향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기뻤지요. 군인들도 마치 가족을 만난 것처럼, 성관계를 빼고 고향의 축제나 산이나 강 얘기를 같이 하곤 했어요. 군인들도 그걸로 만족했지요."(센다의 책 82쪽, 박유하의 책 59쪽)
"그녀들이 부대를 따라 행동할 때는 양복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양복이라고 해봐야 면원피스나 투피스였다고 한다. 그런 복장으로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이나 자신의 일상용품들을 넣은 트렁크를 들고 군인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습지대 같은 곳을 걸을 때 혹은 강을 건널 때는 훈도시(남자 속옷)만 걸친 군인 옆에서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올리고 있었다고 한다."(센다의 책 89쪽, 박유하의 책 60쪽)

'일본의 전력'에 실린 위안부 사진 '도하(渡河). 1938년 6월18일 황허 연안 류위안에서 찍었다고 한다. 군인들을 따라가는 중이었는데, 사진을 찍으려 하자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활짝 웃었다.

'일본의 전력'에 실린 위안부 사진 '도하(渡河). 1938년 6월18일 황허 연안 류위안에서 찍었다고 한다. 군인들을 따라가는 중이었는데, 사진을 찍으려 하자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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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제 등을 때렸습니다. 한창 하는 도중에 문득 내지(일본) 생각이 나면서, 이러고 있는 우리의 존재가 웬일인지 무척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끝나고 나서 방을 나오는데, 여자가 누운 채로 "멋지게 죽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뒤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여자가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겠지요. 베개 옆에 여자의 옷이 가지런히 접혀 있었는데, 맨 위에 부적주머니가 올려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전쟁터에서 위안부를 안은 건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고 이때 한번 뿐입니다."(센다의 책181,182쪽, 박유하의 책61쪽)

"전투에 나가면 무섭다고 우는 군인들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정말 살아서 다시 오면 반가워하고 기뻐했다. 이러는 중에 단골로 오는 군인들도 꽤 되었다. "사랑한다" "결혼하자"는 말도 들었다." (진상규명위 자료, 박유하의 책 65쪽)

"복숭아꽃 필 때 기헤이가 말 타는 병이거든. 우리를 이쁘다고 말 태와갖고 말을 쫓아버려. 그럼 난 말 그 위에 올라앉아 가지고 죽는다고 소리지르면 말이 더 놀라서 뛰네. 사진도 많이 박혔는데 한국 나오면서 다 내삐렀어. 그거 놔두면 문제 될까봐."(진상규명위 자료, 박유하의 책 66쪽)

"그 사람들은 뭐 저거 쌍시런 그런 거 취해서 오는 기 아니라 서로 얘기하고 놀고 그럴라고 저그 마음 위로하고 할라고 오지....그 장교들은 잘 안해요. 저기 몸 생각해요. 고향의 처자들 고향의 마누라들 생각나는지 얼마나 그런지 앉아 운당께. 마누라 생각에, 그 부부간에 그렇게 정 말고도 자기 마누라가 눈에 선해가 남의 여자하고 잘 안할라 그래요. 어떤 거는 그냥 가요. 그래도 자주 오지. 위로받고 놀고, 술 먹고 얘기할라고 자주 오지. 육체는 안하는 사람이 쌨어요."(진상규명위 자료, 박유하의 책 69쪽)

이런 발언들을 소개하면서 박유하는, 위안소의 풍경을 바꿔넣고 '짐승같은 일본군'의 이미지를 뒤집으려고 한다. 박교수는 위안부들이 증언하는 군인의 폭행은 오히려 규범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사례로 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일본군은 오히려 위안소 업자들의 과도한 착취를 막기 위해 관리를 했으며 사병들의 폭행과 모욕행위를 금지했다는 점을, 박교수는 강조한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올바른 경영'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혹은 공식적인 '위안부의 비극 프레임'에 갇혀, 위안부들이 개개인별로 느끼고 체험한 기억들이 억압받았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적 주장이다. 위안부들의 순수한 기쁨의 기억을 외부자들이 소거할 권리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 체험과 기억 역시 그녀들의 생을 구성했던 한 순간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박교수도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위안소의 중심풍경일 수는 없다"고 단서를 붙인다. "이런 식의 평화 다음 장면에, 혹은 이웃한 장소에 위안소의 비참은 존재했다"고 밝힌다.

일본군의 선량한 면모, 가엾은 정황들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에게 가해진 '거대한 폭력의 집행자'라는 딱지를 유보하려는 박교수의 노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위안부도 희생자이지만 일본군도 결국은 거대한 국가시스템의 '장기 말'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면서, 피해자의 자리로 옮겨놓으려는 의견을 우린 어떻게 읽어야 할까. 폭력과 살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군이 대개 그렇게 막 대하는 건 적국(중국) 여자들이었을 뿐, 조선 위안부에겐 '준 일본인'처럼 대했다는 견해를 우린 당시의 '세밀한 정황'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위안부 폭행과 학대(중절 수술 등)의 주체는 일본군 뿐 아니라 포주들이기도 했는데, 이런 목소리가 묻혀왔다는 지적을, 우린 '당시 현실내막'으로 읽어야 할까.

다양한 인터뷰들과 그 사이에 들어있는 박교수의 '생각'들을 읽으며, '착한 일본군' 콤플렉스를 다른 비극에 적용해보면 어찌 될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임진왜란 때 강토를 유린한 왜군 중에서 '착한 군인'을 찾아내서 그 기억들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면? 혹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군인들 중에서 '착한 군인'을 찾아내서 그 기억들도 전쟁의 중요한 일부이며 전쟁의 또다른 의미이기에 남한이 가진 기억들 중에 그것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조선 위안부가 '정대협'과 같은 단체들에 의해 고착화된 비극 프레임을 갖게된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국민적 판단의 수준을 너무 낮춰보는 것일 수 있다. 집단 체험의 보편적 양상을 온국민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추출해낸 결과로 보는 것이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을까.

일본군에 대한 파편적 기억들을 수집해 그들의 선량한 면모를 부각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위안부의 역사적 비극 프레임을 결코 바꿀 수 없으며, 그것에 영향을 줄 수도 없다. 그것들도 역사적 기억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굳이 반박할 필요를 못 느끼지만, '착한 일본군'의 존재가 '부당한 고통을 받은 위안부의 역사'를 털끝만큼도 이동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한 독자의 생각이다.

위안부 여성들에게도 계급장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다. 진상규명위 자료다. 그것을 말해준 위안부 여성은 빨간 바탕에 금줄 세 개가 있고 별이 세 개 있는 계급장을 달았다. 이 계급은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고 한다. 경력이 오래 되어 군인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매일 4, 5시가 되면 점호를 했고 이때 말 안 듣는 여자들을 때리기도 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일본군과 위안부가 느꼈을 수도 있는 교감이, 인질범에게 인질이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하는 판단을 했다. 거대한 범죄의 틀을 용인한 일상에서, 일본군과 위안부도 '인간관계'를 맺었을 수 있으며 또 일본군의 의식구조를 자신의 삶과 정신에 이식하는 과정을 거쳤을 수도 있다. 박교수는 그 '비정상적인 관계 감정'을 거대한 범죄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다른 이면으로 제시하려는 것이 아닐까.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인용한 '거리'로는 충분하지만, 역사가 정색을 하고 채택할 핵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제국의 위안부> 샅샅이 읽기

1편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617332365768

2편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619133619323

3편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621094988284

4편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706451008322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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