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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혈사회]7살 최군을 해친 '악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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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깊은 곳에서, 구역질부터 솟아올랐다.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이 끔찍해졌다. 경기도 부천의 초등생 최군이 지난 15일 무단결석 45개월만에 냉동고에서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된 뒤, 국민들에게 돋았을 '소름'은 아마 지금껏 경험한 것 중에 최악이었을 것이다. 언론과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저마다 부랴부랴 수습책과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17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나서서 긴급회의를 열고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全數) 점검에 착수한 것도 이같은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언론들은 최군이 무단 결석한 뒤 학교와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그 집 밖의 누구도 아이의 상황과 행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아동보호 시스템'이 부실을 넘어 무관심에 이르른 결과로 나타난 '참사'라고 지적한다. 최군 사건이 드러나게 된 것은, 지난해 말 인천 '16kg 여자아이(11세)' 학대 사건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동거녀의 학대를 못견뎌 아이가 탈출한 이 사건으로 교육당국은 장기결석 아동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최군 사건을 포착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이 사건의 핵심 문제가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무관심에 있었다는 관점이 부각되고 있다. 즉, 최군 문제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더라도 살인과 시신 유기 등의 참혹한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간절한 안타까움이 담긴 시각이다. 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장기결석자들을 제대로 점검해서, 추가로 벌어질 수 있는 아동학대 범행을 막는 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책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 사건에서 만난 것은 '참혹한 결과물' 뿐, 아직도 제대로 파악된 것은 없다. 최군은 학교에 입학한지 두 달 만에(2012년 4월30일) 등교를 멈췄다. 같은 반 여학생의 얼굴을 연필로 찌르고 옷에 낙서를 해서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였다. 등교를 요청하는 학교 측에 어머니 한씨는 '홈스쿨링'을 시키겠다고 말하면서 거부했다고 한다. 아버지 최씨는 최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여러 차례 손찌검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가 다쳤다고 진술했다. 국과수는 1차 소견에서 최군의 얼굴과 머리에 멍이 든 것 같은 변색현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최군이 죽음에 이른 과정은 석연치 않다. 아버지는 2012년 10월 씻기 싫어하는 아이를 욕실로 끌고가다 아이가 다쳤으며 병원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한 달 뒤인 11월에 숨졌다고 말하고 있다.

최씨는 아내 한씨(34세, 최군의 동생인 딸과 함께)가 친정에 간 사이,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집에 있는 냉동실에 넣었다고 진술했다. 훼손한 까닭은 냉동실에 넣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왜 냉동실에 넣으려고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013년 3월 부천에서 인천 부평구로 이사올 때도 최군의 시신을 옮겨왔다. 그는 지난 15일 부인 한씨가 경찰이 찾아올 것 같다는 전화를 했을 때, 최군 시신을 가방 2개에 나눠 남아 인천 계양구에 있는 친구의 집에 옮겼다고 밝혔는데, 가방 속엔 시신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들어있었다.
이 사건을, 다시 서술하는 일조차도 우리를 우울하고 참담하게 하는 것이지만 굳이 다시 거론하는 까닭은, 이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헤아려보기 위해서이다. 이것을 '정신 나간' 엽기적 부모의 특별한 행각으로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오원춘 시신 유기와 맞물린 시점을 감안할 때 모방범죄로 볼 것인지, 우리 사회가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관찰을 게을리한 무심을 질타해야할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이 퍼즐조각처럼 맞물려 일어난 총체적 비극으로 봐야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부모는 정신병력이 있지도 않았고 사이코패스 성향도 없었다고 한다. 4년 동안 아이의 훼손된 시신을 집에 두고 멀쩡하게 살았고, 이사할 때까지 옮겨 갔다. 또 최군의 동생인 딸에 대해서는 특별한 학대 정황이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음악학원에 보내는 등 교육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최군에 대한 부모의 '학대' 이유와 상황에 관한 치밀한 조사가 더욱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정부는 장기결석 초등생 220명 중에서 112건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였는데, 그 중에 8건이 아동학대가 의심돼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사건 파악을 의뢰했고 13건은 소재 파악 불가능으로 경찰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이 나선 13건은 모두 소재를 밝혀냈고, 그중 하나가 최군 사건이었다. 최근 미취학 아동들에 대한 가정내 학대가 급증하는 것도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군 사건은, 우리 사회의 '냉혈지수'를 보여주는 심각하고 극단적인 사례이다. 인간관계의 기초를 이루는 가족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치'가 매몰되고, 모두가 모두에게 이리처럼 으르렁거리는 '정글사회'의 단면이다. 수천년 인간사회의 기틀이 되어온 가족이 살육의 아수라장 속에 놓인 사건을 두고, 우린 '학교 안나오는 학생'들 숫자나 파악하고 그 상황을 살피는 것으로 대책을 삼아야 하는, 사실상의 속수무책에 빠져 있다.

3년 전의 험담에 앙심을 품고 이웃에 농약을 탄 두유를 건네 70대 노인의 기사, 여행 가방에 든 채 길가에 버려진 나체여성 시신. 오늘 사회면에 함께 실린 기사들은, 이 사회의 문제가 가족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 패닉에 시달리고 있는 걸 느끼게 한다. 사회가 갈수록 살벌해지는 건, 특정인들의 별난 범죄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내면 속에 '지켜야할 기본'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 땅의 지도자들과 기득권과 기성세대는, 무슨 가치를 심어왔는가. '돈'과 권력으로 한 줄을 선 탐욕의 가치, 범죄에 대한 깊어가는 불감증, 존경과 존중과 배려와 같은 '관계 가치'를 비웃는 사회. 디지털에 매몰된 비정한 에고이즘, 이런 것들이 최군의 비극을 만든 진짜 원인이 아닌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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