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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을지로 수입가게 "도망가듯 폐업" 사연

최종수정 2016.01.27 16:42 기사입력 2016.01.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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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기자의 일상취재 - '눈물의 발견'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지하상가들 사이에 위치한 다모아 무역 내부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지하상가들 사이에 위치한 다모아 무역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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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올해로 30년째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지하상가에서 수입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우천 다모아 무역 대표(51)는 '이야기 세계사'를 읽고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읽던 책을 덮고 장 대표는 "물건들이 많이 나가서 보여 드릴게 없는데"라며 수줍게 말을 시작했다.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 무전여행 격으로 한국을 떠난 장 대표는 문득 '여기 물건들을 가져다 팔면 돈을 좀 벌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80년대 초반엔 외국 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이었어요. 83년도인가 84년도인가 내가 외국에 나갔었는데 그때 당시엔 사람들이 외국을 자유롭게 못 드나들었던 거죠. 외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굉장히 비싸게 팔렸습니다."
3평 남짓한 이곳을 지나칠 때면 퍼시 애들론 감독의 '바그다드 까페'가 떠오른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길 한 가운데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붉은 벽의 카페. 사막의 모래 대신 쌓인 것은 먼지다. 장 대표는 먼지가 묻으면 묻은 대로 그대로 놔둔다. 장 대표는 "오히려 손님들이 닦는 재미로 구매를 해가기 때문에 일부러 손을 안 댄다"며 "보관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1987년부터 다모아 무역을 운영하고 있는 장우천 대표

▲1987년부터 다모아 무역을 운영하고 있는 장우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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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핀란드, 스웨덴 등. 장 씨가 20여개국에서 사온 크고 작은 중고품들은 이곳에 전시돼 있다. "한국에선 삼사십년만 지나도 다 앤티크라고 부르는데 100년 넘은 것들이 앤티크고 100년 안된 것은 빈티지라고 합니다." 해외엔 앤티크 제품만 취급하는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한다. "외국에 가나면 관광지는 거의 안 가보고 야시장이나 벼룩시장에 꼭 가봅니다. 저 방패는 스페인 톨레도 지방에서 가져온 것인데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곳이에요. 중세 도시로 이슬람 문명이 많이 남아 있어요."

20대 초반, 사업 초기 외국에서 사기도 많이 당했다. 장 대표는 현금 결제를 하고 그 자리에서 송장을 작성해 포워딩(forwarding) 업체를 통해 물건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종종 보내주기로 했던 물건이 오지 않거나 허위 송장으로 돈을 날린 적도 있다. 개인 짐이나 여권을 잃어버린 횟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유럽엔 집시들이 많거든요. 굉장히 조심해야 해요. 혼자 다니다 만나면 뭘 빼앗겨도 빼앗겨요. 동남아시아나 중국도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옷도 검소하게 입고 말을 아껴야 합니다."
▲20여개국을 돌며 수집한 소품들

▲20여개국을 돌며 수집한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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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린 물건 중에서 유독 장 대표의 기억에 남는 물건들이 있다. "예전에 중국 쪽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는데 거북이 형태의 브론즈(동) 제품이었어요. 당나라인가 청나라 시대 때 들어왔던 물건이라고 하는데 이게 알고 보니 유물급이었죠. 근데 그걸 모르고 아주 저렴하게 팔았어요."

"야생동물보호법이 생기기 전에는 호피 같은 것도 취급을 했었거든요. 호랑이 가죽을 몇 번 가져왔었는데 이걸 갖고 옷을 만들었나 봐요. 높으신 양반이 로비할 때 호피무늬 옷을 썼다고 했는데 그 옷을 만든 디자이너가 우리 가게에서 가죽을 사갔었죠."

가게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사슴 박제는 캐나다 퀘백의 앤티크 숍에서 가져왔다. "사슴 중의 왕이라고 부르는 엘크(말코손바닥사슴)란 동물인데요. 이게 뿔이 얼마나 센 지. 받치면 담장도 무너지고 사람도 크게 다쳐요. 크기가 코끼리만 하다네요. 집에 소장하시려면 핀란드에서 가져 온 이 사슴 박제는 어떠세요? 더 귀엽지 않나요?"

100명이 오면 100명 모두가 골라가는 물건이 다르다고 한다. "수집병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중독된 거지. 말 조각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만 모으고 부엉이 좋아하는 사람은 또 죽어라 평생 동안 부엉이만 모아요. 그런 심리 같은 게 있나봐."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보니 오히려 손님들이 들어와서는 더 조심스러워한다고. "오래 장사했지만 행패 부리거나 하는 분들은 없었어요. 다들 구경만 하고 가시고. 약간 고고한 맛이 있다 보니 들어오는 걸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외국엔 이런 상품을 취급하는 사람들을 전문가로 인정해주는데 한국엔 그게 아직 정착이 안 된 것 같아요."

▲다모아 무역에서 판매 중인 소품들

▲다모아 무역에서 판매 중인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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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온 물건을 팔 때 장 씨는 딸 시집보내는 기쁨을 느낀다. "물건들이 각자 임자들한테, 제 주인 찾아갈 때 희열을 느낍니다. 미국에서 온 저 물건이 컨테이너에 실려 물 건너 배타고 와서 한국에 도착한 다음에 세관을 통과하고 여기 을지로까지 와서 물건을 산 사람 집까지 가면 그 전엔 또 얼마나 회전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마치 원래 주인을 찾아준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낍니다."

장 대표에게 골동품 재테크에 대해서 물어봤다. "투자 목적으로 사려면 희귀품으로 해야 하는데 종류가 있어요. 빈티지 타자기라던가 축음기, 전축 같은 게 좋죠. 유명한 회사 예를 들면 코카콜라와 연관된 상품들도 괜찮습니다. 연대가 자꾸 올라 갈수록 가격은 올라갑니다"라고 귀띔했다.

높아진 임차료가 부담스러워진 장 대표는 당분간은 사업을 쉴 계획이다. "일단 지하에서 도망을 좀 가려고요. 요즘 불황이 심해서 그런지 창업 의지가 다들 없는 것 같아요. 을지로 상권이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기도 하고. 섭섭하지만 이제는 마무리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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