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현재는 국가비상사태…직권상정해야" vs 국회 "직권상정 요건 안돼"
청와대가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직권상정을 적용해달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기환 정무수석이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려면 다른 쟁점법안을 우선 통과시켜야 한다'며 직권상정을 간접 시사한 게 도화선이 됐다. 현 수석은 정 의장에게 "선거구 획정도 직권상정 요건이 미비한데, 이것(선거구획정안)만 직권상정하겠다는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기"라며 국회를 자극했다.
직권상정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이달 초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면서 한풀 꺾이는 모양새였다. 새누리당은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9일까지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이 선거구 획정 뿐 아니라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심사기일을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곧바로 이어진 12월 임시국회 들어서는 '직권상정' 언급을 자제해왔다. 정 의장이 "심사기일을 지정하는 부분에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고 법안 통과가 안된 것을 국가위기로 볼 수 없다"며 직권상정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쟁점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 없이도 직권상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국회법 85조 1항 2호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를 근거로 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국가가 비상사태에 빠지면 여야 합의와 관계없이 심사기일을 지정해 처리할 수 있다.
청와대가 직권상정을 언급하면서 여당도 다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국회부의장인 정갑윤 의원은 16일 최고위원ㆍ중진연석회의에서 "'비상사태'라는 견해에 논란이 있지만 지금이 비상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면서 "특단의 대처가 있어야 한다"고 동조했다. 율사 출신인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지금 경제 상황이 보통이 아니다"는 말로 국회법에 명시된 비상사태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국회는 당청의 이 같은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 사무처 고위 관계자는 "국회의장의 주장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즉 선거구획정안은 직권상정 대상이 되고 나머지 법안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국회는 또 최근 율촌 등 법무법인에도 자문을 구해 비슷한 답변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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