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빠진 사업가 '씨킴'의 여덟 번째 개인전
자폐증 날린 '그림의 힘'
[천안=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위로 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 ~~ " 전시장에서 어김없이 그의 갑작스러운 노래가 시작됐다. 이번엔 '사랑한 후에'다. 자신이 매일 아침 드로잉하면서 그린 그림 중 나무 위에 새가 그려진 작품을 보고는, 곧바로 노래를 불렀다. "아, 새를 보니까 노래가 저절로 나오네요."
그림에 빠진 사업가, 김창일(64) 아라리오 회장이다. 김 회장은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오를 만큼 미술품 수집으로 유명하지만, 예술가로 활동한 지도 벌써 16년째다. 그래서인지 패션감각과 장난기어린 소년 같은 말투, 자유로운 행동이 그 나이대 사업가와는 전혀 다르다. 김 회장 자신도 사업가 보다는 예술가로 보아 주기를 바란다.
'씨킴(Ci Kim)'이란 예명으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 회장이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 2년 동안 서울과 제주도에 총 다섯 개 뮤지엄을 오픈한 후 열리는 개인전이다. 지난달 31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번 전시는 매우 긴장감을 준다. 뮤지엄을 개관한 후 사람들이 작가 '씨킴'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 조금씩 더 알게 된 것 같다"며 "비록 나는 미술 전공을 한 것도 아니지만 사업에서 계속 새로운 것들을 시도했던 것처럼 작품 활동에서도 실험을 해왔다"고 했다.
김 회장은 모친으로부터 천안터미널을 넘겨받아 사업을 키워 신세계 충청점, 멀티플렉스 영화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천안과 서울, 중국 상하이의 아라리오 갤러리에 이어 최근 서울 옛 공간 사옥을 리모델링하고, 제주도의 빈 모텔과 영화관을 개조해 뮤지엄을 운영 중이다.
김 회장은 "어릴 적 자폐증을 앓아 단체행동을 잘 못했다"며 "대신 어떤 대상에 몰두하고 관찰하는 데 익숙하다. 성인이 되니 사업과 그림이 대상이 됐다"고 했다. 그는 또 "작품 활동을 하면서 처음엔 모든 사물이 사람이나 나 자신처럼 보여 정신분열이 오기도 했다"며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작품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번 개인전에는 합판-철판-합판-시멘트 블록을 덧대 1년간 자연스럽게 부식시킨 다음 떼어낸 추상 작품과 청동 조각, 일상을 기록한 드로잉과 버려진 냉장고를 의인화한 설치 작품 등이 나왔다. 시멘트로 추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최근 서울과 제주에서 뮤지엄을 세우면서 공사현장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건축재료인 시멘트에 매력을 느꼈다"며 "앞으로는 시멘트 재료와 그림을 결합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험하려 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또한 그가 평소 보여주지 않았던 사진도 작품으로 나와 있다. 사진에는 그가 과거 들렀던 런던과 베를린 뉴욕의 뒷골목, 표지판, 간판 등이 담겨 있었다.미술관과 백화점을 구경하러 무려 900번을 외국에 다녀왔다는 그는 미술품 구입에 대한 얘기도 언급했다. "예를 들어 나는 중국에 가서도 만리장성은 가지 않고 내내 미술관이나 갤러리만 갔었다. 그림 사는 건 작품이나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그냥 끌리는 것을 산다. '촉'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작품들 중엔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 등 시간이 갈수록 유명해졌던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지난해 그는 건강이 악화돼 큰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올해는 자신이 9년 넘게 키운 개가 세상을 떠났다. 김 회장은 "이 사건들이 점점 물질적인 것보다는 내면의 것에 더 충실하고 싶게 만든다"며 "나는 사업을 하기 때문에 그림을 팔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후 예술가로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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