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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 3. 에릭 클랩튼의 'Reptile'(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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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고향, 도마뱀 그리고 블루스… 기타의 신이 유년을 추억한 걸작

[아시아경제]
에릭 클랩튼의 '렙타일'

에릭 클랩튼의 '렙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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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에게 삼촌의 영향은 얼마나 큰가. 소년은 삼촌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게임을 시작하고 주일 미사를 처음으로 땡땡이치기도 하며 야구장에 가서 특정 팀의 팬이 되기도 한다. 에릭 클랩튼(70) 역시 "나의 취향이 형성되는 데는 삼촌 아드리안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한다. '렙타일(Reptile)'은 클랩튼이 세상을 떠난 삼촌을 생각하며 만든 음반이다. 이 앨범에서 우리는 '기타의 신'의 유년을 엿볼 수 있다.

클랩튼이 적극적으로 관여한 재킷에서부터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어린 클랩튼이 웃고 있는 재킷사진에는 '렙타일(도마뱀)'이라는 제목이 찍혔다. '도마뱀'은 블루스 앨범의 제목으로는 낯설지만, 이 또한 유년의 흔적이다. 이 '도마뱀'은 그의 고향 사람들이 서로 짓궂게 부를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앨범 슬리브에도 옛 고향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유년의 추억에 맞추어 음악 역시 복고적이다. 특히 블루스의 흔적이 깊다. 클랩튼은 블루스의 우상들과 조우한다. 빅 조 터너(Big Joe Turner)의 '갓 유 온 마이 마인드(Got You On My Mind)',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컴 백 베이비(Come Back Baby)' 등 블루스의 고전 몇 곡이 리메이크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색을 입혀 재해석하기보다는 원곡 그대로의 느낌에 집중한다. 원곡을 들으면 리메이크곡이 얼마나 흡사한지 눈치챌 수 있다. 그럼에도 연주에서는 클랩튼의 독창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기타의 신이 애무하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쫄깃한 사운드가 근사한 목소리와 어우러지며 원곡과는 다른 느낌의 황홀한 순간을 선사한다.

클랩튼은 추억과 전통을 복원하면서도 과거에만 골몰하지 않는다. 첫 곡인 '렙타일'에는 보사노바 리듬에 블루스 기타를 얹은 파격이 눈에 띈다. 달콤한 기타 솔로로 시작하는 '빌리브 인 라이프(Believe in Life)'는 긍정적인 가사를 담은, 연인과 같이 들어도 좋을 팝송이다. 삼촌과 숙모를 생각하며 만든 '선 앤드 실비아(Son&Sylvia)'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의 단순한 연주가 짙은 여운을 남긴다. 복고적이지 않은 곡들에도 블루스 스타일의 기타 연주가 배어 있다.

사실 '렙타일'은 '기타의 신'을 언급하며 주로 거론되는 앨범은 아니다. 그 기나긴 음악 여정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 담기지도 않았고, 압도적인 연주가 돋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신 원숙한 클랩튼이 있다. 열네 곡에 추억의 음악과 현재의 진보성을 고르게 담았고, 연주력의 과시 대신 편안함이 자리한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고 이 이상은 없을 만큼 완벽하다. '렙타일'은 클랩튼의 후기작에 속하지만 과거와 현재, 편안함과 완벽함이 공존하기에 역설적으로 클랩튼의 음악에 입문하기에 최적의 앨범이다. 블루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주저 없이 권할만한 작품이다. 때때로 걸작은 취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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