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강조했다.
아무런 절차도 없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자신에게 사퇴요구를 쏟아낸 친박계의 행태가 "법과 원칙, 정의에 어긋난 것"이란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그간 "의원총회를 통해 선출된 원내대표인만큼, 의원들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사퇴를 의결하면 수용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왔다.
유 원내대표의 회견 내용은 행정부 수장이 국회 제1당의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는 시도가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란 판단을 깔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의 사퇴 압박을 2주간 견뎠다는 게 유 원내대표의 뜻으로 들린다. 사퇴를 수용한 것도 이날 새누리당 의원총회 결의에 따른 것이지 대통령의 압박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모양새를 갖춘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가 야당과 합의해 정부로 보낸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유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이는 곧바로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 뜻으로 해석됐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자신의 정치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놨다. 그는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2주간 저희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려는 청와대와 친박계의 뜻은 결국 관철됐지만, 13일 간 혼란의 책임이 유 원내대표의 '자기 정치'에 있는지 혹은 박 대통령의 무리한 의회 압박에 있는지를 두고 여론전이 당분간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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