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사과(謝過)의 핵심은 진정성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목사이자 처세술 전문가인 노먼 빈센트 필은 "진정한 사과는 단지 실수를 인정하는 것과 다르다"고 표현했다. 잘못된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표현해야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본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과를 한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지도자에게 사과의 의미는 진정성만으로는 설명하기가 부족하다.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사죄발언을 했을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충분하다는 답변 보다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이 항상 많았다.
지도자의 사과에는 진심 뿐 아니라 책임지는 모습도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을 대표하는 지도자라면 악화된 관계를 회복하고 재발방지를 사과에 녹여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대통령의 사과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변곡점이 되곤 했다. 바로 책임지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사과하는 모습을 통해 잘못을 시인함과 동시에 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사회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비록 전직이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1월 5공 비리와 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한 주범 등의 이유로 대국민사과를 하고 강원도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며칠 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쇄신을 약속했다. 결국 국무총리와 당대표까지 모두 교체됐고 그 이후에는 5공 청문회 등으로 통해 전직 대통령이 구속수감되는 초유의 사태가 야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에 대해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는 각종 재난방지 매뉴얼 작성으로 이어졌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하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한다"며 대국민사과했다. 이후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됐고 5ㆍ24 대북제재조치가 만들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사과발언을 했다. 집권 3년을 완전히 채우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기마다 한번씩 사과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과 대부분을 국민을 대상으로 직접 한 게 아니라 국무회의 도중 국무위원들 앞에서 죄송하고 송구스런 마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빈센트 필이 말한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이 국내에 창궐한지 한달이 넘었다. 삼성서울병원장이 전염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여전히 새로운 환자가 매일 수 명씩 발견되면서 이목은 대통령의 입에 쏠리고 있다. 대통령은 갈림길에 서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방지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보일지는 오로지 대통령의 선택에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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