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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막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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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은 얼마나 무거울까.'

이 진중하고 엄숙한 질문의 해답을 찾는 시도는 100여년 전 이미 행해졌다. 주인공은 미국의 던컨 맥두걸 박사. 임종을 앞둔 환자 6명을 침대에 눕히고 몸무게를 쟀다. 숨이 멎는 순간 평균 21g의 몸무게가 줄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맥두걸 박사는 이 결과를 1907년 과학저널에 실었다. 하지만 겨우 6명에, 수분 증발 등 생체학적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반박이 잇따랐다.
맥두걸 실험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21그램'(2003년 개봉)에는 "21그램, 5센트 다섯 개, 벌새 한 마리, 초코바 하나, 어쩌면 영혼의 무게"라는 명대사가 나오지만, 과학적으로는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보다는 영혼의 온기와 빛깔을 따지는 편이 현실적이다. 얼마나 인간적이고 이타적인지 말이다.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말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대로라면, 천금의 가치와 무게를 지닌다. 일언기출(一言旣出) 사마난추(駟馬難追)라는 잠언대로라면, 한 번 뱉은 말은 사두마차(4마리 말이 끄는 빠른 마차)도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날쌔다.

말의 무게는 상황에 따라, 누구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막걸리 한 잔 걸친 소시민의 "나라가 개판"이라는 탄식과 얼굴 반지르한 정치인의 "나라가 개판"이라는 독설은 질감부터 다르다. 선배가 후배에게 "엉망이구만" 하고 야단치는 것과 사장이 임원에게 "당신, 엉망이야"라고 질책하는 것이 결코 같은 질량일 수도 없다. 술 자리에서 "형, 사랑해"는 애정의 표현이지만 정색하고 말하는 "형, 사랑해"는 커밍아웃이다. 정규직에게 "그만두고 싶냐"는 경고성 채찍이지만 비정규직에게 "그만두고 싶지"는 정신적인 칼부림이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말의 무게를 잰다면 지위가 올라갈수록, 권력이 많을수록 더더욱 묵직해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게다가 막말이라면?
잊을 만하면 막말 파문이다. 항공사 오너가의 막말이 잊히기도 전 대학 이사장이 막말을 내질렀다. 막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스스로 자멸하는 궤적도 비슷하다. 어느 종편은 심히 중차대한 비리 뉴스에 '이완구-성완종 이름 궁합'이라는 방송사에 길이 남을 막말 보도를 남겼다. 이쯤되면 막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다. 저 맥두걸 침대에라도 눕혀보고 싶어진다. 막말의 무게와 영혼의 온기가 반비례하다는 사실이야 능히 짐작이 되지만.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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