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손톱과 시' 34년만에 재공연…'공간 소극장' 부활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의 질의응답을 받고 있는 조정권 시인과 김구림 작가.(왼쪽부터)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의 질의응답을 받고 있는 조정권 시인과 김구림 작가.(왼쪽부터)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음~음~살~보. 나무. 관세음. 음~음. 강. 춘. 봄. 강물. 꽃. 달밤……"

시인이 종이를 든 채로 뜻을 온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단어들을 끊어 읽는다. 중간 중간 해괴한 웃음소리도 발설한다. 어느 새 한 전위예술가가 시인 곁으로 다가가 앉는다. 그리곤 손톱을 깎는다. 깎을 때 마다 스피커에서 확장된 손톱 깨지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
15분. 4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짧은 퍼포먼스였다. 난해했다. "단절된 소리, 단어만으로 이뤄진 즉흥적인 시, '음성시'다. 염불하듯 중얼거리며 읽는다. 손톱 깎는 소리를 크게 내려고 예전엔 공책 받침대를 자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 주인공이었던 조정권 시인(67)은 이렇게 얘기했다. 파트너인 전위예술가 김구림 작가(80)는 "중국이나 로마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왕비들의 화려하고 긴 손톱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손톱을 깎는 행위는 권위를 내버린다는 걸 뜻한다. 스님이 목탁 두들기듯, 잡념을 잊어버리는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했다. 작품 제목은 '손톱과 시'다.

지난 1981년 5월 '공간 소극장'에서 선보였던 '손톱과 시'가 재공연되고 있는 모습

지난 1981년 5월 '공간 소극장'에서 선보였던 '손톱과 시'가 재공연되고 있는 모습

원본보기 아이콘

이 퍼포먼스는 1981년 5월 27일 열렸던 작품으로, 34년 만에 재연됐다. 지난해 9월부터 미술관으로 바뀐 서울 종로구 원서동 옛 '공간' 사옥 지하 소극장에서다. 그동안 전시실로 쓰이던 '공간 소극장'은 1992년 문을 닫은 후 이날 재개관하게 됐다. 1980년대까지 실험적이고 다양한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했던 소극장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나가자는 많은 이들의 바람이 있어서였다.

창덕궁과 현대그룹 사옥 사이에 자리한 옛 공간 사옥은 1977년 한국1세대 건축가 김수근씨가 지은 건물로, 설계사무소 겸 전시·공연이 이뤄졌던 곳이었다. 당시 예술종합지 '공간'의 편집장이었던 조 시인은 "그 시절 소극장에서 시 낭독, 전통·현대 무용, 타악기 연주, 판소리, 연극, 마임, 인형극,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의 공연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런데 '사장'이라고 불리기를 아주 싫어했던 김 건축가가 타계한 후엔 '공간'안에서 예술에 대한 열의가 점차 사라졌다"며 "작년에 미술관으로 재개관한 옛 '공간'의 소극장을 다시 살리자는 뜻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전위예술 선구자로 불리는 김 작가도 과거 '공간'을 자주 들락거렸다. '손톱과 시'라는 퍼포먼스 역시 '공간'에서 만났던 이들과의 합작품이었다. 당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초청된 김 작가가 어떤 작품을 만들지 고민을 나눴고, 그 결과물을 '공간 소극장'에서 초연했던 것. 그러나 정작 여러 가지 이유로 상파울루에서는 이 작품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한다.
'공간' 사옥을 매입해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김창일 아라리오 그룹 회장(64)도 이날 소극장 재개관 기념 공연을 지켜봤다. 그는 "소극장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이 많아 부활을 결정하게 됐다"며 "옛 '공간'과 인연이 있는 예술가를 포함해 오케스트라나 세계미술관에서 공연하는 퍼포먼스팀 등 여러 장르의 공연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앞으로 80명 규모 소극장에서 매달 한 두 차례 씩 다채로운 공연을 열 계획이다. 우선 오는 13일 색소포니스트 강태환의 연주와 전통악기의 협연이 무대에 오른다. 6월에는 한국 마임 1세대 유진규 마이미스트의 공연이 계획돼 있으며, 7월에는 판소리 명창 배일동이 드러머 사이먼 바커와 트럼펫 스캇 틴클러와의 콜라보로 파격적인 야외 음악무대를 연출할 예정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서울대병원·세브란스, 오늘 외래·수술 '셧다운' "스티커 하나 찾아 10만원 벌었다"…소셜미디어 대란 일으킨 이 챌린지 '바보들과 뉴진스' 라임 맞춘 힙합 티셔츠 등장

    #국내이슈

  • 밖은 손흥민 안은 아스널…앙숙 유니폼 겹쳐입은 축구팬 뭇매 머스크 베이징 찾자마자…테슬라, 中데이터 안전검사 통과 [포토]美 브레이킹 배틀에 등장한 '삼성 갤럭시'

    #해외이슈

  • [포토] 붐비는 마이크로소프트 AI 투어 이재용 회장, 獨 자이스와 '기술 동맹' 논의 고개 숙인 황선홍의 작심발언 "지금의 시스템이면 격차 더 벌어질 것"

    #포토PICK

  • 고유가시대엔 하이브리드…르노 '아르카나' 인기 기아 EV9, 세계 3대 디자인상 '레드닷 어워드' 최우수상 1억 넘는 日도요타와 함께 등장한 김정은…"대북 제재 우회" 지적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