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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대③]시장에 두손 든 북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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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미항공우주국)가 공개한 야간의 북한 모습은 경제선진국으로 부상한 한국과 대조되게 시장활동으로 근근히 버티는 북한 경제와 비슷하다

나사(미항공우주국)가 공개한 야간의 북한 모습은 경제선진국으로 부상한 한국과 대조되게 시장활동으로 근근히 버티는 북한 경제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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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북한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로 유엔으로부터 엄격한 제재를 받고 있다. 특히 대량 현금이 오가는 거래는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미국 등은 고삐를 죄고 있다.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도 올해 북한에 원유를 수출한 기록이 없다.
그런데도 북한에는 택시를 비롯한 자동차 운행이 늘고 고층아파트 건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북한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하고 있을까? 북한의 '우리식 경제관리'가 통한 것일까? 답은 '시장'이다.그러나 북한은 공식으로는 시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시장활동을 감안해 '시장화'라는 용어를 쓴다. 김정은 체제하 특히 지난 1년 간의 북한 경제를 '시장화'라는 말 이상으로 잘 설명하는 단어도 드물다.

◆시장화 진전으로 국가배급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통일부는 최근 펴낸 '김정은 3년 평가와 전망'이라는 자체 보고서에서 "북한에서는 시장화 진전으로 주민들이 국가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주민들은 다양한 시장활동 즉 농업이나 도소매업,가공업 등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대부분의 생필품을 구입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결과 주민들이 시장에서 얻는 소득과 구입하는 생필품은 2012년 이후 약 80%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은 서울대평화통일연구원의 실태조사와 일치한다. 장용석 서울대평화통일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이 2011년부터 3년간 북한을 탈출한 북한 주민을 설문조사해 펴낸 지난 8월29일 '북한 사회의 시장화와 소득분화'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69.8%가 장사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75.2%보다는 낮지만 북한 주민의 시장경제활동이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 사람들은 시장과 돈에 중독됐다.정부가 식량 등을 배급하지 않아 시장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한다.사진은 북한 지폐

북한 사람들은 시장과 돈에 중독됐다.정부가 식량 등을 배급하지 않아 시장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한다.사진은 북한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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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09년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해 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16세 이상 인구 1700여만명 가운데 83%가 시장을 통한 비공식 경제활동의 경험이 있다.

서울대 조사에서 장사·부업을 통한 월평균 가구수입의 경우 상위 10%는 100만원을 웃도는 수입을 올렸다고 답했다. 50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24.8%를 차지했다. 즉 북한 주민 넷 중 한 명은 장사나 부업을 통해 고수입을 올린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4인 가족이 생활하려면 최소 15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시장활동을 통해 이보다 몇 배의 돈을 버는 사람이 북한 주민 넷 중 한 명인 셈이다.

쌀값과 환율 등 시장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면서 안정적인 소비생활이 가능해졌다 . 그 결과 북한에서도 개인가치와 행복 추구 경향이 나타났다.

휴대전화와 한국산 고가 생필품에 대한 선호 등 소비패턴이 진화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북한 내 휴대폰 보급대수는 2011년 80만대에서 지난해 200만대, 올해 240만대로 증가한 것으로 통일부는 추정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휴대폰 사용 시간을 월 200분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당간부 등은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폰을 등록해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가입자는 이보다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휴대폰 보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과 한국 영상물 등 문화 콘텐트 소비 욕구도 급증한 것으로 통일부는 추정하고 있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남한 영상물을 경험한 비율을 조사해봤더니 2006년 56.7%에서 2013년 80.1%로 높아졌다.
북한 곳곳에 있는 장마당에서는 USB를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장마당에는 문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중국산 고급 전자제품, 브랜드 없는 한국산 화장품에서부터 라면 등 생필품 등이 모두 다 있다. 심지어 노트북 컴퓨터(북한식으로는 노트컴)의 배터리도 구할 수 있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요즘에는 중국산 태양광 축전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북한 경제의 견인차 '사경제와 사금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임을출 교수 겸 연구실장은 지난 10월 연세대학교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세계북한학학술대회에 '북한 사금융의 형성과 발전:양태,함의 및 과제'라는 논문을 제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임 교수는 2013년 2월 3차 핵실험 강행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유례없는 제재를 받고 있지만 북한 경제가 위축되기는커녕 고급아파트와 문화오락시설,식당이나 상점이 성황을 이루고,프라다와 구찌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소비가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북한 내에 확산되고 있는 사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금융이 북한 경제사회 변화를 촉진시키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사금융은 공인된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사채업자를 중심으로 금전의 대부,금융중개,주선 등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북한에 사금융이 발전한 것은 재정 파탄과 공적 금융의 기능상실, 사적인 경제활동을 통한 자본 축적 여건 조성, 사적 투자 이익 추구 경향의 심화 등을 꼽았다.

북한은 1995~2002년 경제난으로 재정규모를 축소함에 따라 기업에 대한 국가의 재정자금 지원을 사실상 중단했고 이에 따라 자금사정이 악화된 공장과 기업소 등은 사금융에 의존하게 됐다고 임 교수는 분석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사금융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사채업자(돈주)의 고리대금업 형태이며 월 20%의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형태가 보편화돼 있다.

돈주들은 현물지급능력이 있는 협동농장이나 국가기관들에게 돈을 꿔주고 20~30%의 이자를 받거나 투자를 한 뒤 이득금을 받기도 한다.

돈주들은 또 국토관리국을 끼고 투자해 부동산을 인수하거나 아파트를 건설해 매매하기도 한다.

돈주들은 초창기에는 귀국 재일교포지만고난의 행군시기에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자신만의 상업(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상인'을 비롯, 백화점 임대사업자,사채업자,외화를 보유하면서 환차익을 노리는 환전상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사금융이 활성화되면서 전당포와 송금대행업도 성행하고 있다고 임 교수는 전했다.

그는 그동안 사금융 확산이 경제력에 기반한 불평등 구조를 확산시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구조화하는 등 북한의 사회변화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설명됐다.

임 교수는 "사금융의 활성화는 사적 경제주체의 이윤추구를 동기로 하고 있어 시장경제의 진전이나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특히 "사금금융의 활성화가 북한체제의 안정 요소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시장이 확산되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공간과 기술, 기회가 점차 증가함에 다라 자본을 확대재생산하는 방식 또한 점차 다양하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당국 재원 상황 갈수록 악화=통일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시장화의 영향으로 민간의 재원은 증가했지만 당국의 재원은 감소해 계획경제 영역으로 시장이 침투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배급제로 공급되던 식량과 생필품 등이 시장을 통해 거래되고 국가가 주도하던 각종 사업,이를 테면 건설과 무역 등에 민간이 일부 참여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아파트는 국가기관이 건설해 주민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국가 재정이 나빠지면서 분양제가 도입됐다는 게 통일부의 전언이다. 임교수와 같은 분석이다. 돈주들의 자금을 받아 아파트를 건설하고 아파트의 일부를 이들에게 배정하면 이들은 이를 다시 전매해서 이득을 챙기는 구조가 정착했다는 것이다.

북한 정부의 재정 수입이 감소한 것은 남북 교역 중단과 대북제재,자원가격 하락에 따른 대중무역 수익악화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공고화를 위해 마식령 스키장과 문수 물놀이장, 미림 승마구락부 등의 건설과 혁명유적지 개보수 등 대규모 전시성 사업에 무리하게 재원을 지출한 것도 북한의 국고가 줄어들게 한 이유로 꼽힌다.


이런 이유에서 북한 당국은 어쩔 수 없이 '시장의 존재'를 눈감아 주고 있다.심지어 이를 도입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2012년 6월 도입하고 지난 5월 확대한 6.28조치인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농장에서 계획을 초과 달성한 농산물에 대해 시장 거래를 허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김정은체제의 경제정책 추진 현황과 평가'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장마당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 개선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도 시장 이익 수취를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국영상점 확대를 통해 외화를 흡수하고 시장사용료(장세) 등을 통해 돈주의 시장 수익을 일정부분 정기로 징수하고 인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기도 한다.

또 전자결재카드의 사용 활성화 등을 통해 핵심계층과 신흥부유층이 보유한 외화도 흡수하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중동에 근로자를 파견해 임금을 흡수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개발구 지정,상품 다양화 등관광을 통해 외화를 확보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러시아 경제의 악화와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로 이 마저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경제는 시장화 진전에 힘입어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그러나 소비와 유통 중심의 시장화와 당국의 생산부문 투자여력이 부족하고 개혁의지 불충분해 대규모 외자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한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지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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