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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한 건 1분39초만에 '뚝딱'…본회의 법안 심의 '대충대충'

최종수정 2014.12.15 06:52 기사입력 2014.12.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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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는 국회 역사에 새로운 신기록을 세울 뻔했다. 역대 국회 가운데 가장 빠른 법안 처리 속도를 기록할 뻔 했던 것이다. 138건의 법안이 표결처리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3시간47분(오후2시13분부터 오후 6시까지), 1개의 법안당 소요된 시간은 1분39초에 불과했다. 법안처리와 무관한 의원 개인들의 신상발언 등을 제외할 경우 시간은 이보다 짧을 것이다. 법안들이 말 그대로 '처리'되고 있었다.

국회가 원래 이처럼 100여건의 법안을 한 번의 본회의에서 찍어내듯 처리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전의 국회에서는 10~30여건의 현안을 두고서 의원들이 반나절에서 한나절을 들여가면서 법안을 심의했다. 이러던 국회가 17대(2004년5월~2008년5월) 들어서면서 한꺼번에 100여건의 의안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역대 국회 회의록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한번의 본회의에서 100여건 이상의 법안을 처리한 경우는 총 8회가 있다. 17대 국회에서 3회, 18대 국회에서 2회, 19대 국회에서 3회를 기록하고 있다.(19대 국회는 아직 1년반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100여건 이상 처리 실적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9일 본회의는 역대 2번째로 빠른 법안처리 속도를 기록했다. 이보다 빨랐던 적은 2011년 6월29일 본회의 한번 뿐이다. 당시 본회의는 3시간11분 동안 122건의 법안을 처리하는 '속도전'을 보였다. 법안 한건당 처리 속도가 1분32초인 셈이다.

법들이 이처럼 빨리 심의되는 것이 왜 문제일까?

한번의 본회의로 이처럼 많은 법률을 처리할 경우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해당 법안 내용에 대해 잘 모른 채 표결에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100여건의 법안이 한꺼번에 본회의에 오를 경우 사전에 법안 내용에 대해 준비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법안 내용은 잘 모른다.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국회의 특성상 각각의 의원은 소관 상임위 사정에는 비교적 밝지만 전체 법안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법안에 대한 당의 입장이나 간단한 법안 심사 요약문을 토대로 법에 대해 판단을 한다. 사전에 법안 내용 등을 공부한 뒤에 법안에 대한 입장을 정할 수도 있지만 한꺼번에 100여건을 표결하는 경우에는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재선 의원은 "의원들이 찬성을 눌러야 할 지 반대를 눌러야 할 지 모를 때가 되면 소관 상임위 간사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 지를 보고난 뒤 표결을 한다"고 귀띔했다. 국회의원이 독립적인 판단이 아닌 눈치보기로 법안에 투표를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법안이 이처럼 무더기 처리되는 것은 몇가지 원인이 한꺼번에 작용하고 있다. 우선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제헌국회의 경우 본회의에서 의결한 법안 숫자는 148건, 2대 국회의 경우에는 215건, 3대 국회는 154건이었다. 반면 18대 국회(2008년5월~2012년5월)의 경우 2353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물리적으로 처리를 해야 하는 법안 건수가 늘었다.

법안이 이처럼 늘다보니 상임위에서 법안을 심의하는 것이 사실상의 법안심의의 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민감한 법률이 아닌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 위원들의 합의 처리한 경우 이를 대체적으로 따른다. 분업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300명의 국회의원의 표결을 통해 법안이 처리되고 있지만 300명 국회의원의 지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점점 무더기 법안 처리비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17대 국회 전체 법안 처리 법안 가운데 100건 이상이 처리된 본회의에서 처리된 법안이 차지하는 비율이 17%였으며, 18대 국회는 12.9%로 나타났다. 반면 19대 국회의 경우에는 1513건의 법안 가운데 26.4%가 100건 이상 처리되는 국회에서 처리됐다. 본회의에서 처리 의안이 많을 경우 의원들이 법안 전체를 훑어볼 여지가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 본회의 법안심의에 경고등이 들어온 것이다.

이처럼 대규모로 법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이면에는 여야의 빅딜식 원내 운영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여야가 법안 처리를 위해 빅딜식의 협상을 벌이다 보니 법안을 몰아놨다 한꺼번에 주고받기 식으로 처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9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도 무더기 법안 처리가 예고됐다. 여당 법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홍일표 의원은 12일 새누리당 원내현안대책회의에서 "법사위에는 타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이 200건 정도된다"며 "29일 처리할 수 있는 것 등을 감안해 현재 올라와있는 타상위법안은 다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 여야가 처리하겠다고 벼르는 법안들이 추가로 합해질 경우 29일에도 수백건의 법안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풍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번에는 국회 역사상 가장 짧게 훑어보고 법안을 처리하는 '신기록'을 달성하는 순간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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