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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 아버지 시대에 바치는 헌사…영화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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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가족을 위해 일생을 한국 산업화 발전에 바친 한 가장, 혹은 장남의 이야기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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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유시민 전 장관은 최근 '나의 한국현대사'라는 책에서 "우리의 역사전쟁에는 분명한 주체가 있다. 하나는 5.16과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4.19, 5.18과 민주화 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이라고 말했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 두 주체 중에서도 '산업화'에 초점을 맞춰 한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만 하고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 혹은 장남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줄거리는 전형적이다 못해 통속적이다. 하지만 그 보편성이 가져다주는 울림 역시 만만치않다.

영화의 제목이면서 주요공간인 '국제시장'은 부산 중구 신창동에 위치한 재래시장이다. 1945년 광복 후, 전시 물자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던 상인들이 터를 잡으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갖 상품들이 국제시장을 통해 전국으로 공급됐다. 당시 '사람 빼고 다 외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던 이곳은 피란민들의 터전이기도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덕수'의 가족들이 피란길에 오르다 끝내 정착한 곳도 이 곳, 국제시장이다. 윤제균 감독은 "국제시장은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눈물겨운 공간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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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아버지의 일대기

영화 속 '덕수'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나 다름없다. 유년기에 한국전쟁을 겪은 '덕수'는 흥남철수 당시 끝내 배에 오르지 못한 아버지와 여동생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헤어지기 직전 아버지가 남긴 말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당부였다. 어머니와 철없는 동생 두 명을 데리고 부산 국제시장으로 넘어온 '덕수'는 어린 나이에 구두닦이, 막노동 등을 하면서 생계를 보탠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학교를 가던 '덕수'는 미군에게 '쪼꼬렛또 기브 미'를 외치며 개다리 춤을 추는 '달구'를 만나 평생의 친구로 지내게 된다.

성인이 된 '덕수'에게는 남몰래 키운 꿈이 있었다. 마도로스가 되어 바다를 누비며 전세계를 항해하는 것. 하지만 공부를 곧잘 하던 남동생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자신의 꿈을 접고 학비 마련을 위해 '파독 광부'의 길을 떠난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독일 함보른 광산에 도착한 '덕수'는 그 곳에서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일을 한다. 때마침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온 '영자'를 만나 눈이 맞아 결혼에까지 골인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덕수'는 가정을 일구고 가게를 꾸려나가며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이내 막내 동생의 결혼자금을 대기 위해 이번에는 베트남에 상사직원으로 간다. '덕수'는 끔찍한 전쟁의 현장에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끈질기게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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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한국전쟁에서부터 1960년대 파독 광부, 1970년대 베트남전까지 '덕수'는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가장'이라는 책임감과 '장남'이라는 무게감으로 묵묵하게 헤쳐 나간다. '덕수'의 희생으로 남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여동생은 결혼한다. 보다못한 '덕수'의 아내는 "이제는 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도 한 번 살아보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시간이 지나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70대 노인이 된 '덕수'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혼자 눈물짓는다. "아버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 근데 나 진짜 힘들었거든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크린, 깜짝 놀랄 카메오는 웃음 포인트

총 1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국제시장'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서 볼거리 또한 다양하다. 독일 탄광 장면은 체코에서, 베트남전 장면은 태국에서 촬영했으며, 흥남철수 장면에서는 대규모 엑스트라가 동원돼 생생함을 더했다.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한 부산 '국제시장'의 시대별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 부산 기장군에 대규모 세트를 건설하기도 했다. 작품 곳곳에서 등장하는 카메오들도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디자이너 앙드레김, 가수 남진과 씨름선수 이만기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이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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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하이라이트는 1983년 KBS에서 진행한 이산가족 찾기 방송 장면이다. 덕수는 피란길에서 놓친 막내 동생을 찾기 위해 방송에 출연한다. 영화는 실제 이산가족들의 한맺히고 눈물겨운 사연을 스크린 가득 오래 비추는데, 이 장면을 눈물없이 보기란 힘들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의 배경음악도 심금을 울리는 데 한 몫 한다. 배우 황정민은 20대부터 70대까지 '덕수'의 역할을 몸에 걸친 듯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그와 콤비를 이루는 '달구' 역의 오달수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 시대극에 감초 역할을 하며 숨통을 틔워준다.

한국 사회의 고도성장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부분이 철저하게 빠져있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이에 대해 윤제균 감독은 "시대의 화두는 1970년대 초까지 경제화,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말까지는 민주화였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서 1950~70년대까지 메인 이야기에서 정치적인 부분은 뺐다. 경제화를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맸던 부분에 선택과 집중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홍보문구처럼 영화는 '산업화를 일궈낸 아버지 세대에게 받치는 헌사'로 봐도 무방하다. 17일 개봉.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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