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머리 속에 몇 권의 교과서를 꽂아놓고 살아가면서 건전함과 적절함에 공을 들이고 또 그것에 박수를 치지만, 그것 만으로 살 수는 없다. 우리에겐 정말 양념같은 '불량끼'가 필요하다. 유신 시절 노래테이프 맨 마지막에 들어있었던 건전가요를 생각해보면 명확해진다. 그 희망적이고 발랄한 노래는 귀찮게 느껴질 만큼 재미없고 건조하고 지루하다. 거기엔 불량끼가 주는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모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기쁨만큼 슬픔과 아픔이 필요하고 사랑만큼 미움과 분노가 필요하다.
아프고 화나고 미안해.
참 기가 막힌 고백이다. 저 세 개의 엇갈리고 뒤엉키는 감정을 나는 '세컨드 기분'(김경미시인의 ‘나는야 세컨드’에서 말하는 그 세컨드) 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의 당당한 '갑'과 '을'이 되지 못하고, 제3의 존재인 병(丙)이 되어 사랑의 주변을 맴돌면서 질투하고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세컨드다. 물론 여기서 세컨드라 함은, 1대1 관계의 바깥에서 그 중 한 사람과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세컨드가 아픈 이유는, 사랑의 대상인 '갑'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아픔을 가져와 내가 대신 앓는 이 마음은, 세컨드가 사랑의 밀도에 있어선 '을'보다 결코 못지 않다는 점을 웅변한다.
세컨드가 화나는 이유는, 사랑의 대상인 '갑'을, 사랑의 경쟁자인 '을'이 감히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을'은 그를 아프게 했을 뿐 아니라, 내가 만나야할 시간을 빼앗아가고 내가 쏟을 사랑의 자리에 자신의 것을 퍼부음으로써 세컨드의 사랑을 방해해왔다. 세컨드의 자질이나 성질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인 편견은, 바로 저 분노를 섬세하게 이해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컨드가 미안한 이유는, '갑'의 아픔을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고통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을'은 늘 세컨드의 능력 밖에서 그를 무력하게 하는 존재이다. 사랑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저 원초적 조건에 대한 씁쓸한 환기가 세컨드의 미안함에 배어있다.
세컨드 기분이 울림있는 노래가 되는 것은 그 상처와 모순이 극적이고 강렬해서 공감을 끌어내는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기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래가 하나의 힘있는 연대감이 된다. 슬픔은 스스로 발 아래 바퀴를 달고는 대중 속으로 쭉쭉 미끄러져 들어간다. 요컨대 '아화미 현상'은 비련이 자아내는 슬픔의 3형제다. 노래를 한번 들어보라.
왜 이렇게 아무 말이 없니 괜찮은 거니
눈빛만 봐도 널 알수 있어서 마음이 아파
왜 이렇게 아무 말이 없니 괜찮은 거니
니 눈을 보면 다 알수 있는데 마음이 아파
걱정이 되잖아 그 사람 때문에
전처럼 자주 보지 못해서
내가 더 그 사람 미웠어
말을 해봐 울지 말고
너 이렇게 아파하지 말아 줘
늘 뒤에서 널 맴도는
이런 나도 있잖아
왜 그렇게 눈물만 흘리니 무슨 일이니
니 곁에 내가 있을수 없어서 마음이 아파
속상해지잖아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는 너를 보는게
아프고 화나고 미안해
말을 해봐 말을 해봐
울지 말고 어서 내게 말해봐
늘 뒤에서 널 맴도는
이런 나도 있잖아
아프고 화나고 미안해 - 하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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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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