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극작가 니나 레인의 작품..12월1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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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연극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트라이브스(Tribes)'는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로서의 '가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영국의 극작가 니나 레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오른 작품으로, 오는 12월1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막이 오르면, 식탁 위에 앉은 가족 구성원들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적 지식을 총동원해 사람들을 공격하는 학술비평가 아빠 '크리스토퍼', 추리 소설가이자 남다른 공감능력을 가진 엄마 '베스', 언어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고, 가끔 말을 더듬는 첫째 아들 '다니엘', 재능 없는 오페라 가수 지망생 딸 '루스', 그리고 청각장애인 막내 '빌리' 등 이렇게 5명이 한 가족이다.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여보면 이들의 대화가 겉돌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각자 자신이 할 말만을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는 무시하거나 반박한다. 이 틈에서 막내 '빌리'는 가족들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눈으로 입술을 읽는 능력을 배워가며 대화에 참여하려 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비평가, 소설가, 언어학과 학생 등 언어에 민감한 직업을 가진 가족 구성원들이 과연 매일 보는 가족들과의 진짜 소통에도 민감할까"라고 질문한다.


작품의 구상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됐다. 니나 레인은 다큐멘터리 속 청각장애인 부부가 "곧 태어날 아이도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나길 바란다"고 하는 말을 듣고,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가족이란, 구성원들이 자신의 가치관·신념·언어 등 자신이 보고 듣고 믿는 것을 아이들에게 전수하고 싶어하는 하나의 부족(Tribes)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서도 청각 장애인 '빌리'를 두고도 가족들은 수화를 배우거나 혹은 '빌리'에게 수화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청각 장애인이 아닌' 부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셈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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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빌리' 역을 맡은 배우 이재균은 "가족 모두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있지만, 정작 빌리에게 필요한 사랑을 주지는 않는다. 연습하면서도 가족들이 서로 말을 하고 있는데 대화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남명렬은 "가족이라고 하면 다들 '따뜻함'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가족 구성원으로서 개개인들은 단지 개개인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 연극은 그런 면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족들은 말로는 장애가 있는 막내를 보살펴준다고 하지만, 그 방식은 자기 마음대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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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빌리'가 청각을 잃어가고 있는 '실비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빌리는 그녀를 통해 수화를 배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또 저녁 자리에서 가족들이 독순술을 할 줄 모르는 '실비아'와 대화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그 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내 '빌리'는 수화가 아니면 더 이상 가족들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연극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은 '소통'을 가족 내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확장한다. 말과 다른 속마음은 자막으로 처리되고, 다양하게 삽입된 음악들은 앞으로의 일들을 암시한다. 연출을 맡은 박정희 극단 풍경 대표는 "처음에는 청각 장애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작품을 계속 할수록 우리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이야기였다"라고 말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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