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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금융의 두 얼굴]석달간 2조원 짜낸 '매달 성적표'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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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금융'이라는 다소 생소한 대출시스템이 가동된 지 만 3개월이 지나고 있다. '총론에는 찬성, 각론에는 논란'이 기술금융을 압축하는 금융계와 기업들의 반응이다. 담보대출에 안주해 있는 국내 은행들에게는 새로운 성장모멘텀을 제공해 줄 수 있고 기술력만으로 사업화에 한계가 뚜렷한 기업들에게 '맞춤 대출'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주도로 대출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아시아경제는 기술금융이 양적 성장에 치중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2회에 걸쳐 '기술금융의 명암'과 '향후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싣는다. -편집자 주-

창조금융 핵심, 석달간 대출규모 2조원
자체 평가시스템 없어 대출기업 리스크 못 따져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이장현 기자] #1. 최근 대기업과 납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급히 운영자금 3억원이 필요하게 된 A사는 기존 신용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수월하게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국내 최초로 초미립 알루미나를 제조한 기술을 내세워 기술신용평가(TCB) 기반 대출을 받은 것이다. 기술력과 성장성을 높게 평가받은 A사는 기술등급 T-3를 받아 4%대의 저금리로 운영자금을 끌어올 수 있었다. A사 관계자는 "창업초기 신용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기존 신용대출로는 8%대의 고금리를 부담해야 했다"며 "절반가까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2. B은행은 매주 기술금융 실적보고 준비로 분주하다. 실적은 한 달에 한 번 공개되지만 매주 대출실적을 보고하라는 지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과 바로 비교가 되기 때문에 대출규모가 크게 늘지 않은 경우 받게 되는 심리적인 압박도 상당하다. 이럴 때는 편법이라도 써서 실적이 많이 나온 것처럼 꾸며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B은행 관계자는 "이전부터 기술금융을 다룬, 출발선이 다른 은행들과도 줄세우기식 비교가 되고 있다"며 "대출의 질보다는 양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기술금융'이 본격 시행된 지 4개월째를 맞고 있다. 그 사이 정부는 기술금융을 확대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당근과 채찍을 쏟아냈다. 은행들도 3개월 새 기술기반 대출규모를 2조원 가까이 늘리는 등 표면적으로는 이에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기술금융의 필요성과 세부적인 정책방향에는 생각이 엇갈린다.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된 두 개의 사례다.
9월말 은행별 기술신용대출 실적(자료=금융위)

9월말 은행별 기술신용대출 실적(자료=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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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금융은 담보나 신용등급에 얽매이지 않고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기법이다. '우수한 기술력'은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거나 어려울 경우 기술신용평가기관(TCB)에 평가를 의뢰한다. 정부는 궁극적으로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돈이 없어 이를 사업화하지 못하는 많은 중소ㆍ벤처기업이 이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길 바라고 있다. 기술금융이 창조경제를 일으킬 일종의 자금줄이 돼달라는 것이다.
제대로만 정착한다면 은행 입장에서도 신시장 발굴과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정부가 지적하는 담보ㆍ대기업 중심의 여신 행태도 개선할 수 있다. 대기업의 경영상태 악화로 중소기업 대출을 늘릴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직원 면책ㆍ이차(利差)보전 등 실리도 챙길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기술금융담당자는 "수익구조가 약화되면서 새로운 먹거리 창출 등 은행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다"며 "기술금융이 시행되면서 정부의 지원이 이어지고 당위성까지 생기면서 어떻게 보면 새로운 판이 자연스럽게 깔렸다. 긍정적인 현상이다."고 말했다. 즉,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새로운 수익산업을 찾아야 하는 금융권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시장에 돈이 돌아 경제에 활력이 생기는데 일조할 수 있다.
부문별 기술금융 대출금액(자료=금융위)

부문별 기술금융 대출금액(자료=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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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술금융은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에 노출되고 있다.

우선 기술을 평가하는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기술동향과 시장정보를 담은 기술정보 데이터베이스(TDB)는 60% 가량이 2005년 이전 정보로 현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급히 추진한 탓에 은행은 자체적으로 기술형 중소기업을 평가할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TCB에는 신청이 몰려 결과적으로 은행의 대출이 지연되고 있다. C 은행 기술금융담당자는 "기술등급을 평가하는 곳이 3개인데 전 금융기관이 신청을 하다보니 보통 1∼2주 걸리던 대출도 이제는 3∼4주 이상 걸린다"며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고객도, 영업점도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이 공개되면서 정부가 양적 경쟁만을 유도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권에서는 전 정권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녹색금융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녹색금융은 경쟁적인 대출로 중복 투자, 대출 부실 등의 결과를 낳고 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기술금융 역시 일부 은행에서 기술력과 무관한 기업에도 TCB를 활용하게 해 실적으로 잡거나 기존 담보대출 기업들을 TCB 활용으로 실적에 넣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식이다. D 은행 기술금융담당자는 "실적이 공개되고 은행평가에도 반영을 하니 부담이 안 갈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은행 평가 지표인 혁신성 평가제도 역시 기술금융 공급규모가 큰 규모를 차지한다. 이밖에도 중소기업 대출 비중, 기업여신 대비 투ㆍ융자 잔액 비중 등 양적인 평가 요소가 많다. 결국 실적을 늘리는 데만 급급해 기업의 기술력과 리스크 등을 꼼꼼히 따지지 못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밖에 기술금융을 은행권 중심으로만 의존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귀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술금융은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는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면서 금융산업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도 "기술금융을 포함한 금융 관련 정책들은 은행 뿐 아니라 벤처캐피탈, 엔젤투자, 정책성 자금 등이 총망라된 중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이장현 기자 insi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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