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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의世·市·人]담배, 그 기구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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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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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부터 담배가 전래되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서당에서 훈장과 학동이 맞담배질을 하는가 하면 조회(朝會)를 하는 정전(正殿)은 신하들이 내뿜는 담배연기로 '오소리 굴'로 변했다. 간접흡연을 견디다 못해 격분한 광해군은 어전에서 담배를 피우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겁박했다. 사실상 조선조 최초의 금연령이다.

'여러 식물 중에 이롭고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南靈草ㆍ담배의 별칭)만한 것이 없다.호학애민(好學愛民)의 군주이자 '적극적 애연가'였던 정조는 금연논쟁이 비등하자 신하들에게 '인간을 사랑하는 천지의 따뜻한 마음의 발로(發露)인 담배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함께하고 그 효과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이른바 '남령초 책문(策問)'을 내린다. 책문이란 당면한 국정현안에 대한 정책방향을 묻는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이니 요즘 말로 하면 '전 국민 흡연 장려정책'을 수립한 셈이다.
금연이 곧 애국이던 시절도 있었다. 대한제국 말 백성들이 국채보상을 위해 단연(斷烟)하여 돈을 모은다는 소식을 들은 고종 황제는 스스로 금연을 선언했다. 동경 유학생들도 총회를 열어 단연동맹으로 이 운동에 동참했다.

한때 담배는 화폐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642년 버지니아에서는 담배를 '법적인 지불수단'으로 공인했다. 담배 대신 금이나 은을 지불수단으로 하는 계약은 불법으로 간주됐다. 이후 버지니아에서는 거의 200년 동안 메릴랜드에서는 150년 동안 담배가 화폐 역할을 했다.

당시 식민지 정착민을 위해 영국의 젊은 여자를 수입(?)했는데 런던으로부터 배가 도착하면 버지니아의 호색한들은 최상품 담배를 한 다발씩 둘러매고 부두로 달려갔다. 여자의 몸값은 담배 100파운드(약 45㎏)로 매겨졌는데 수요가 급증하자 150파운드로 상승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살 수 있었던 담배는 결국 차가운 재를 남기고 연기가 돼 허공으로 흩어졌다.
지난 11일 정부는 현재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을 내년 1월부터 2000원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담뱃값 인상은 '세수확보 차원이 아닌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라는 간곡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을 빙자한 전형적인 꼼수 서민증세(增稅)'라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담배 한 갑에 부과되는 각종 부담금과 함께 변형된 '죄악세(Sin Tax)'라 할 수 있는 '개별소비세(국세)'도 추가시켰기 때문이다. 담뱃값을 4500원으로 인상할 때 조세재정연구원이 추산한 예상 추가 세수는 2조8000억원이다.

기호식품으로 분류된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왜 죄악인지, 죄악을 저지르고 세금을 내면 면죄가 되는지, 담뱃값 인상을 무릅쓰고 더욱 가열차게 피워 죄악세를 많이 내면 모범납세자로 표창을 하는지, 전 국민이 일시에 금연하면 죄와 악이 사라진 천국이 되는지, 왜 대법원은 지난 4월11일 흡연자 김모씨 등 30명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1999년에 제기한 소송을 15년 만에 최종 판결하면서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KT&G와 국가가 담배의 유해성을 은폐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를 확정했는지 등등 이율배반의 모순과 역설을 규명하는 일은 자학(自虐)과 가학(加虐)의 경계에서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모호하다.

그나저나 죄악을 드러내놓고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비용 또한 만만찮으니 담배 없으면 단 한 줄의 기사도 작성할 수 없는 '중후한 골초(Heavy Smoker)' 혹은 '사슬형 골초(Chain Smoker)' 기자들의 시름은 가을과 함께 깊어지겠다. 이제 담배는 숨어서 '고독하게 저지를 수밖에' 없게 됐으니 그 맛이 오죽하랴! 갑자기 세상이 거대한 굴뚝처럼 보인다.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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