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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자살뉴스를 읽으며(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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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면, 편집기자는 난감해진다. 이 죽음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죽음에는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살인자가 있을 수 있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자가 있거나, 작든 크든 그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자가 있을 경우엔, 비판의 화살은 쉽게 그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 질병이나 사고 따위가 죽음의 원인이라면, 인간의 무기력함을 슬퍼하거나 비운에 관해 분노할 수 있다. 살아있는 고통을 끊어주기 위해 살인을 행하는 복잡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라도 죽인 자에 대한 비판과 수긍이라는 태도를 지닐 수 있다.
자살은 어쩌면 저 마지막 경우와 닮았는데, (형식적인)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일하다는 점이 다르다. 대개의 살인은 피해자를 동정하고 가해자를 비난해야 하는데 그것은 동일인이니, 동정과 비난이 뒤섞인 채 어중간한 입장을 내놓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살의 문제성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일인이기에 책임을 물을 대상이 사라져버린 상황이라는 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에게 생명이란 일신(一身)에게 속한 절대절명의 가치이다. 죽음 뒤를 보장하는 종교적인 믿음의 체계들, 사회적 가치나 정치적 가치의 실현, 애국적인 열정, 전의, 혹은 철학적인 신념의 실천, 사랑을 향한 정념들, 남은 자를 위한 배려, 혹은 살아생전에 희구했던 결과를 위한 희생. 그것이 아니라면 생에 지친 마음, 절망 혹은 설분, 우울, 낭만적 환상, 환각, 미안함과 도피욕망. 그런 것들이 죽음을 택하는 이유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보아왔다.

때로 그런 것들에 대해 예찬하기도 하고, 많은 경우는 "그래도 죽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는 판단으로, 많은 이들이 살아있는 이유를 지지해주는 편에 선다. 그런 이유들이 과연 한번 뿐인 목숨을 끊는 돌이킬 수 없는 살인 혹은 자살 행위의 당위를 충분히 해명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많은 자살은 자살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어리석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 그런 결론에 이르는 것이 그럴 듯 해보이지 않는다.
죽음에 이르른 자의 판단을, 죽음에 이르지 않은 자가 판단내릴 수 있는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자살하는가'에 대한 대답조차 함께 자살해버렸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들은 살아있는 자의 관점과 사유로 그것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자살을 금지하거나 비판하는 논리 또한 취약하다. 자살을 하려고 한 사람이 다행히 실패했을 때 그를 처벌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자살 의지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살 행위의 미숙을 처벌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자살한 자는 '상징적인 처벌' 이외에 별다른 처벌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자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판들은 먼지처럼 사소하게 흩날릴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네티즌들의 댓글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그것에 대한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든가, 남은 자식들을 두고 저 홀로 그렇게 훌쩍 가버렸으니 무책임하다고 혀를 차는 것이 그것이다. 혹여 맘 약한 녀석들이 그것이 멋있는 것처럼 여겨져 제 목숨을 끊을까봐 걱정을 섞는 것도 그 한 갈래이다. 그래, 그런 것이라도 내놔야 뭔가 이 심각하고 기구한 상황의 묵직한 실마리를 터는 코멘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살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왜 스스로 죽느냐,의 문제에 임하면, 그것은 심각한 자문자답이 되기 일쑤이다. 행복이란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이며, 성취란 무엇이며, 돈은 또 무엇이며, 이 지루한 살이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린 문득 그런 가볍지 않은 질문을 만나고 마는 것이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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