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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들의 '허무한 대국민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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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2005년 1월,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육군훈련소 인분사건으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인분사건은 신병을 교육하는 교관이었던 중대장이 화장실 청소 상태를 문제 삼아 피교육 훈련병 192명에게 인분을 찍어 먹도록 강요한 가혹행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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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군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네티즌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가 눈물로 베게를 적셨다', '아들이 있다면 다시는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며 군에 대한 불신과 병역기피를 우려하는 글로 도배했다. 윤 장관은 파장이 커지자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이를 반려하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국방 장관으로는 첫 대국민사과문이었다. 윤 장관은 사과문을 통해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방방지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가혹행위를 철저히 막겠다던 윤 장관은 5개월만인 그해 6월에 다시 대국민사과문을 읽어야 했다. 이번엔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전방소초(GP)에서 고참의 언어폭력 등에 시달린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동료 부대원 8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윤 장관은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군기강을 확립하겠다"며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국방 장관의 사과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10년 4월, 김태영 국방 장관은 취임 6개월만에 천안함 피격사건을 겪었다.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과정에서 군이 열상감시장비(TOD) 영상을 숨긴 사실과 허술한 보고체계가 도마위에 올랐다. 결국 김 장관은 "국민들에게 불신과 의혹을 초래했다"면서 "철저한 조사와 후속조치를 통해 군 기강을 재정립하겠다"는 내용의 대국민사과를 했다.
군의 허술한 보고체계는 2년만에 다시 문제가 됐다. 2012년 10월, 북한 병사가 경계초소(GOP) 철책을 넘어 우리 소초에서 출입문을 두드려 귀순한 사건이 있었다. 일명 '노크귀순' 사건이다. 김관진 국방 장관은 결국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철저한 규명과 후속대책으로 군 기강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장관의 대국민약속은 소용이 없었다. GOP 군기사고는 또 터졌다. 올해 6월, 동부전선 GOP에서 임모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5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엔 김관진 장관 대신 백승주 차관이 나서 대국민사과문을 읽었다. 백 차관은 "사고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책은 무의미했다. 한민구 장관은 취임한 지 두달 만인 지난달 4일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28사단에서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국군 창군 이래 국방 장관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모두 6번이다. 대국민사과문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군은 감추기 급급한 모습만 보이다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피해 훈련병이 편지로 외부에 알리면서 세상에 알려진 인분사건, 국정감사에서 들통나버린 '노크귀순' 사건이 대표적이다. 두번째는 대국민사과문에 사용된 단어들이다. 철저한 규명,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 군기강 확립 등 단어는 10년이 지나도 토시 하나 변한 게 없다.

한 장관은 대국민사과문에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받겠다"고 말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 되려면 군 특유의 '쉬쉬'하는 문화와 말 뿐인 대책을 없애야 한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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