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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토리인물사]덕으로 천하를 도모한 유비

최종수정 2020.02.12 15:50 기사입력 2014.08.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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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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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劉備, 161~223)는 촉한의 1대 황제로 조조, 손권과 함께 삼국지의 주역이다.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고 제갈량을 삼고초려함으로써 후한 말 혼란스러운 천하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전한 경제의 후손이다. 젊어서부터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 관우, 장비와의 깊은 인연도 이때 이루어졌다.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자 토벌군에 참여해 그 공으로 지방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공손찬과 도겸에 몸을 의탁하고 여포에게 쫓겨 조조에게 투항하는 등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관도전투에서는 원소의 편에서 싸웠지만 조조가 이기자 친척인 형주목 유표에게 의탁하여 객장이 되었다.
207년 제갈량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삼고초려에서 제갈량은 유명한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한다. 시인 두보는 '촉상'에서 "세 번이나 찾아가 천하의 계책을 세우니"라며 그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선제께서는 신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몸을 굽혀 세 번이나 초려를 찾으셨고 당세의 일을 물으니 신은 이에 감격하여 몸을 바쳐 일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제갈량은 "조조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하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그와 싸울 수 없다"고 평가하고 손권도 "강동을 차지한 지 이미 3대가 지났고, 땅의 지세가 험하고 백성이 복종하고 있으므로" 그들과는 연합해야 된다고 역설했다.

결국 형주와 익주를 장악함으로써 천하를 삼분할 수 있다는 계책이었다. 이에 따라 손권과 연합하여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남하를 막고 형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유장이 다스린 익주를 얻음으로써 삼국정립의 기반을 구축했다. 익주를 확보한 것은 우선 손권과의 지략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유장과 인척이라는 인연을 교묘히 이용해 익주 공략의 명분을 확보했다. 다음으로 유장이 무능했기 때문이다. 유장은 성품이 온화하고 유약했다. 그러나 난국에 유약한 지도자는 나라를 지킬 수 없었다. 법정, 장송 등 믿었던 신하들도 앞다퉈 유비 옹립에 나섰다. 214년 유비는 청두로 들어가 익주목이 되었다.
219년 한중왕이 된다. 220년 조비가 위의 황제가 되자 221년 그도 촉한의 1대 황제가 된다. 그러나 의형제인 관우, 장비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여몽의 계략으로 죽은 관우의 원한을 갚기 위한 오나라 정벌은 이릉의 싸움에서 촉나라의 대패로 귀결된다. 223년 백제성에서 후사를 제갈량에게 의탁한다.

지도자 유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후흑학의 대가 리쫑우는 낯짝이 두껍고 마음이 검은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지도자로 유비와 조조를 들고 있다. 유비는 어쩌면 삼국지 주요 인물 중 가장 뛰어난 연기자일지 모른다.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점에서 그렇다. 임종 시 유비는 제갈량에게 "귀하의 재능은 조비의 열 배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대업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만약에 대를 이을 내 아들이 보좌할만하면 그를 보좌해 주고 만약에 재능이 없으면 귀하가 스스로 대신하라"고 유언한다. 제갈량은 "신은 고굉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충성을 서약한다. 이후 234년 오장원에서 죽을 때까지 제갈량이 보인 충성심은 고금에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유비는 나라를 다스리는 비결은 인의라고 주장했다. 참모 방통에게 "조조와 나는 물과 불처럼 다르다. 조조는 조급하지만 나는 느긋하고, 조조는 폭력을 앞세우지만 나는 인의를 내세우며, 조조는 속임수에 능하지만 나는 매사를 정성으로 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인의 도덕이 통치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인심을 얻는 자가 천하는 얻는다"는 말처럼 마음을 얻는 공심(攻心)이야말로 대업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하고 상황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커다란 약점이었다. 무모한 오나라 정벌이 대표적 사례다.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유비는 변통에 능하지 못하고 상황에 맞게 계책을 그리는 면에서 조조만 못하였으므로 천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원대한 포부를 펼치지 못했다"고 평했다. 적절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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