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해섭 기자]‘광주정신’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5·18이 광주민중항쟁에서 저항과 정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듯이, ‘광주’라는 고유명사는 ‘광주정신’이 되면서 민주, 인권, 평화를 상징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80년 5월 항쟁 당시 윤 후보는 조선대 병원 안과 레지런트 1년차로 응급실로 실로 오는 눈을 다친 부상자들과 계엄군 등을 치료하느라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집에 들어갈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
이후 윤 후보는 사망자와 부상자들의 병원 기록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 당시 기독교병원 전홍준씨와 함께 전남대 병원, 기독병원에서 치료 받았던 환자 기록을 확보하는 한편 선교사들을 통해 국외로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1993년 광주시민연대 공동의장이던 윤 후보는 80년 5월의 현장에 있었던 외국인 영어 강사를 초청, ‘반인륜 청산’에 관한 세미나를 연 것이 광주의 세계화의 첫 출발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아 인권 위원회’ 의장인 바실 패르난도씨와 프로그램 책임자 산지와 리야나게씨가 ‘아시아 인권헌장’을 광주시민연대와 공동작업 할 것을 제안하자 이를 수락, 마침내 1998년 광주에서 세계 유명 인권운동가와 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인권헌장’ 선포식을 갖고 광주정신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특히 지난 2011년 5·18 기록들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때에는 심사 소위원장인 아바콘 박사의 소재를 파악, 광주로 초청해 5월 묘역, 상무대 영창 등 유적들과 전남대 5.18연구소애 보존된 기록들을 보여주는 등 사전 작업을 치밀하게 했다.
그 결과 뉴 라이트 회원들이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반대 시위에 나서자 심사위원들이 한국내에서도 합의 되지 않는 기록을 등재하는 것에 동의를 미루는 등 제동이 걸리자 아바콘박사가 이들을 설득, 등재시키도록 하는데 숨은 공로자 역할도 했다.
노해섭 기자 no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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