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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⑭]"감사리스트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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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죽기전에 곡 하고싶은 목록)도 좋지만

영화 버킷리스트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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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관계는 많고 친구는 적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을 알고 바쁘게 뛰어다녔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 관계는 많고 친구는 적지"라고 공감한다.

세종시로 위문공연(?)을 온다던 친구들 중 몇 명만이 들렀을 뿐이다. 전화하거나 서울에서 볼 때 "내려가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조금' 섭섭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돌이켜 보니 받는 데 익숙하고 주는 데 인색했다. 많은 친구들이 지방 근무를 할 때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간 경험이 거의 없다. 아니 미안해 하지도 않았다. 미안해 하는 친구들에게 도리어 미안하다.
옛말에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하면 본인만 피곤하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램프의 요정 지니가 그랬다. 램프 속에서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꺼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겠다고 생각하다 시간이 흐르자 꺼내주는 사람을 혼내주겠다고 맹세한다. 다시 램프 속으로 들어가는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은혜를 갚는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관심, 격려, 애정, 지원, 받기만 하고 보답하지 못한 '관계'가 수두룩 했다. 나보다, 지인들이 나에게 섭섭해 할 일이 훨씬 많았다. "아! 내가 램프속의 지니였구나"고 반성한다.

감사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준 사람들, 그들이 필요로 할 때 내가 옆에 있어주기 위해서 감사 리스트를 만들자. 필요 여부를 떠나 인간적으로 감사를 표시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리스트부터 만들자.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자. 섭섭해 하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풀어줘야지 생각한다.

감사 리스트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 40대에서 60대 초반의 신중년에게 버킷 리스트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남은 삶을 후회없이 살려는 이들에게 적당한 게 버킷 리스트다. 정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싶으면 감사 리스트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중년에게는 죽음만을 준비하기에는 남아있는 날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두고 병실에서 만난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과 카터 체임버스(모건 프리먼)는 아주 이질적인 인물이다.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일만 알고 인생의 재미를 모르는 잭.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모건. 죽음을 앞둔 이들은 의기투합해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세계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고 후회없이 삶을 마치기를 기대한다. 영화 '버킷 리스트(Bucket List)'의 줄거리다. "인생의 기쁨은 찾았어?" "네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어?" "인생이란 나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느냐는 거지." 두 사람이 영화 속에서 던진 대사들이다. 이들은 여행과정에서 진정으로 원한 것은 돈으로 산 여행이 아니라고 깨닫는다. 가족 그리고 친구와의 진실한 관계가 인생의 기쁨이다. 헤어진 딸과 틀어진 친구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게 두 주인공이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 감사 리스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감사 리스트도 관계회복이란 면은 동일하다. 그러나 앞으로 긴 인생을 살 중년들에게는 실용적인 면도 크다. 인생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에 들어가는데 꼭 필요한 작전지도일 수 있다. 인생 2막을 공격적으로 살지, 수비 위주로 짤 지는 개인의 몫이다. 전반전에는 정신없이 살았다. 눈 앞의 것을 위해 달리고 달리다 보니 주변 사람을 살펴보지 못했다. 사람(人)은 서로 기대어 산다. 한숨 돌려야 한다. 후반전 여정을 함께 갈 동반자을 살펴보고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래도 친구 몇은 손을 좀 볼 계획이다. 위문공연을 못 온 것을 무척 미안해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지방에 4년간 근무할 때 "찾아온 친구만이 진정한 친구"라며 못 가본 친구들을 야단쳤다. 돌아온 뒤에도 이를 빌미로 술도 많이 뜯어 먹었다. 나는 갔었다. 손봐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렁뼈 취급당한다. 약간의 뒤끝이 필요하다. 찾아가서 혼내주는 '뒤끝 끝판왕'은 사양하더라도 기회가 닿으면 한번 혼내줘야 한다. 이게 감사 리스트와 버킷 리스트의 차이다. 통풍이 있는 친구다. 맥주를 마시면 안 된다. 다음에 만나면 소맥을 먹일 생각이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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