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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매거진]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마고필름 김태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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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런 사람이야 No.2

[스투매거진]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마고필름 김태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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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풍랑이 몰려온다.

뗏목 하나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온몸을 감싸는 H2O에게 나 역시 너로부터 생성되었노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또다른 H2O가 내려온다. 반갑다. 눈물샘에서 나오는 H2O가 나의 호흡을 대신한다. 깨어보니 내 방 아침이다. 이불을 걷어내니 꿈 속의 H2O가 현실의 내 옷에 진하게 배어있다. 어디서 오는 바다인지 모르지만 샤워기를 틀어 바다로 샤워를 한다.
이제 겨우 서른여덟이 된 나. 까칠한 피부에 면도는 하는 둥 마는 둥. 더벅머리에 졸려보이는 눈을 하고 캐주얼 복장으로 도심 한가운데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취미이다. 어찌보면 딱 백수다.

발바닥 한가운데가 아파오면 터벅터벅 걸어 사무실로 간다. 나를 이사님이라 부른다. 영화사 사무실로 간다. 나를 대표님이라 부른다.

나는 연매출 300억 원 이상을 찍는, 국내외 회원수 3,000만 명을 보유한 컨텐츠 유통 사이트의 이사이자 영화제작사 마고필름의 대표이다. 거리에 서면 백수처럼 보이는데 사무실로 가면 나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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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초능력이 하나 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외로움을 보는 능력. 쳇, 아무것도 아니라고? 요즘 같은 사회에서 심장 옆에 외로움을 분출하는 장기는 다들 하나씩 붙이고 다닌다고? 그저 서로 모른 척 할 뿐이라고? 더군다나 돈좀 벌었겠다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 위에 덕지덕지 돈으로 분장을 하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며 그런 이들이 다른 사람의 외로움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건, 남의 외로움마저도 돈벌이로 활용하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 외로움을 보는 것. 외로움을 구면(舊面)인 듯 지나치는 것. 이 시대에서는 자연현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외로움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다.

내 눈에 들어오는 외로움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내가 가진 능력을 끌어 모은다. 그게 내가 가진 초능력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며 살면 안 될 게 있나?

바다처럼 살고 싶다. 외로움들아 비처럼 내려라. 내가 그 외로움들의 큰 바다이니까.

유년시절, 유복한 집안에 유교적인 가정에서 유일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이런 유미럴… 대쪽 같은 기상의 할아버지, 사내가 귀했던 집안에서 공부밖에 모르는 샌님 아들보다, 며느리보다, 손녀보다 손자인 나를 아끼셨던 할아버지.

닭백숙이 밥상위에 올라도 겸상조차 허락 받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은 내 입에 들어가는 닭다리를 구경만 해야 했다. 앞에 앉으신 아버지 역시 슬쩍슬쩍 백숙 국물만 휘휘 저으시곤 했다.

나의 중학교 진학을 핑계로 분가에 성공하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휘하에서 벗어나자 아웃 오브 패밀리 모드로 설정 변경을 하셨다. 아버지의 귀가시간이 늦어지고 어머니도 그동안 못했던 친목활동을 점점 늘려가시다가 두 분 사이에 불화가 깊어져서 결국 이혼의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얼마나 외로웠니…’하고 묻곤 한다.
닭다리 두 개로 걸어온 것 같은 그 시절들… 외로움의 크기는 과거의 궤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과 비례하는 것이다.

여동생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돌돌돌 굴러가는 바퀴달린 짐가방 두 개와 함께 눈앞에서 멀어져 갔고 아버지에게 이끌려 새집으로 이사한 나는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됐다. 모든 것이 새것이었다. 이불도 책상도 밥그릇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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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계시는 아버지마저 낯설었다. 누구도 관섭하지 않았던 나의 학창시절은 외로움의 바닷물을 한 방울씩 모으는 시간이었다. 물방울들이 서로 가까워지면 하나로 모이는 것처럼 나는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다녔고 그 무리들 사이에서 그들을 챙겨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무언가 결단력이 필요한 순간이 되면 그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자 학교에서 조그만 사건이 터져도 선생님들은 태균이가 주동자일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가 됐다.

그 무렵에 나는 알았다. 애정결핍에 대한 해결책은 애정에 있는 게 아니라 결핍을 채우는 방식에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집착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 방식을 찾아나갔다.

단순히 가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택했던 대학생활도 지나가고, 전투경찰로 차출되어 매일같이 두드려 맞으며 보냈던 군생활도 끝이 나고, 드디어 사회에 첫 발을 딛으려 할 때 나를 맞이해준 것은 IMF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결핍이었다.

공사장 잡부로 시작한 첫 직장생활. 거친 먼지밥을 먹으며 일당을 받고 통장을 채우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이 세상에 빌어만 먹고 살아왔구나… 부모에게 빌어 먹고 군대 가서 빌어먹고…’ 그런데 정작 세상에 나와 보니 이미 거대한 기업들과 빈틈없이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이 그저 밥값만 하라고 쥐어준 이 일자리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누군가에게 빌어먹는 자리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빌어먹을…

독하게 마음을 먹고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소규모 인테리어 사업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고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나자 그 업체가 부도를 맞게 되면서 그 사업의 마무리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게 되었다.

정말 빌어먹는 것도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임에 따르는 위험부담과 손실 보다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닥쳐오는 풍랑을 헤쳐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거래처 선배의 지인이 모텔을 짓는다며 10억짜리 공사의 인테리어 설계를 맡아서 해보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IMF로 잔뜩 오그라든 시장 경제에서 뜻하지 않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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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당시 젊은 나이였을 텐데 어떻게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 때 제가 스물여덟 되던 해였습니다. 왜 저를 택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보통 인테리어 업자들이 한 번 설계도를 보여주고 나서는 사업주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일을 마무리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처음 인테리어 일을 맡았을 때부터 설계 포트폴리오를 사업주에게 보여주고 수정 요구를 받아 다시 수정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던 모습에 신뢰가 중요했던 업계 특성상 그 사업의 적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말은 쉽지만 건설업계가 텃세도 심하고 인정받기 어려운 분야라고 알고 있어서… 모진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인식이나 관계 속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집중이다라는 각인이 생긴 것 같아요. 아무리 거친 말을 듣고 모진 대우를 받아도 저는 늘 웃고 있었죠. 상대의 뻔한 기대를 여지없이 뒤집어 보일 일을 만들어 냈을 때 그 표정을 상상하면서 ‘할아버지에게, 가족들에게 내가 더 이상 빌어먹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자’라는 생각들.


바다에는 언제나 풍랑이 인다. 그것이 한 종지 밖에 안 되는 바다이든, 태평양이든.
계약금만 받고 시작한 그 인테리어 사업은 사업주가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버리면서 모든 공정이 올스톱 됐다. 동료이자 협력자였던 모든 사람들이 빚쟁이로 변해 몰려들었다.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폐인처럼 매일 술 마시고, 그 건물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자며 나의 이십대 중반을 신음하듯 보냈다.

이쯤 되면 내 삶을 조용히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딱히 살아야 할 이유도 죽어야할 이유도 없기에 살아만 가고 있던 시절에 지인을 통해 온라인 콘텐츠 사업을 하던 류재범 대표를 만났다.

술 한잔 받아 마실 때마다 지나온 얘기들을 읊조렸다. 편한 눈빛으로 마냥 들어주는 모습이 호적에는 없는 친형 같았다. 애정결핍 때문이겠지 생각했다.

어쨌든 내가 살아온 삶과 내게 각인된 삶의 방식들을 폴더별로 샅샅이 검색해버린 류재범 대표는 어느날 갑자기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배워보라고 말했다. 사무실에 출근하기 전 날 밤, 내 몸을 뉘였던 당구대는 한없이 따듯했다.

웹하드의 시조격인 콘텐츠 정보제공 사무실에서 업로드 되는 영화에 자막을 맞추는 단순작업부터 시작했다. 큰돈을 만지던 시절도 잊었다. 신문지나 당구대 대신 소파 위에서 자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월급제로 일하며 자기 할 일만 마치고 정시에 퇴근하는 다른 직원들과 나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내가 올린 콘텐츠의 조회 수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접속 회선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그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찾기 위해 밤을 새고, 그들의 불만과 요구에 대해 실시간으로 답변을 달았다.

내가 담당한 사이트의 신규회원 가입수와 조회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친형 같은 류재범 대표가 콘텐츠를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며 표정이 밝아지는 것만으로도 나의 피로는 말끔히 가셨다.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빌어먹을 땐 빌어먹더라도 밥 주는 사람이 기꺼워하니 신이 났고 탐이 났다. 더 고마운 것은, 류재범 대표가 내가 올린 실적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신뢰고 의리라고 생각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더라도 그에 따르는 연구와 노동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는 법이기에 나는 어느 물이 좋은지 밤새도록 찾아다니며 신나게 물을 퍼올렸고 그 대가로 매달 1,000만 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취권보다도 초식을 알 수 없고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저작권법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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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당시가 기억이 나는데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던 시기에 광풍처럼 몰아닥친 저작권법에 의해 많은 온라인 유통사들이 폐업을 당해야 했죠?
아직도 음지에서 대동강 물을 퍼나르는 업자들이 있지만 많은 사이트들이 한 순간에 사업을 접었죠. 인류 문화가 태동하면서 소유권에 대한 정리가 문화의 발전 속도에 맞춰 완만하게 완성단계에 이르렀지만 무형의 콘텐츠라는 것에 대한 인식과 그 소유권 문제는 상대적으로 급작스럽게 대두되기 시작했죠.

27년만에 본인의 히트곡에 대한 저작권을 되찾은 가수 조용필 선생님의 경우처럼 저작권은 앞으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가 될 것이고 또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제 살 깎아먹기의 과유불급한 욕심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이젠 마음대로 들을 수 없는 세상에서 내 것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 만큼 남의 것에 대해 치르는 비용과 제한도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인류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만큼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자판기에 갇힌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다시 가야할 곳은 고시원이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모든 빚을 청산하고 갈 곳이 없어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1평 남짓한 고시원만큼 편한 곳도 없었다. 그저 모두 내 탓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삶은 배워나가는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리라. 한동안 잊었던 외로움과도 반갑게 재회를 했다.

누군가를 고객으로 삼고 나를 영업하는 과정에서 완벽을 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꽁초를 주워 피고 배고프면 고시원 라면을 먹고 또 생각하고…. 그 때 내게 아직도 겪어야할 많은 부침(浮沈)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상황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던 내가, 나에게 모여드는 외로움의 물방울들이 나만을 위한 성장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나만을 위한 고시원 전등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이제는 물도 돈 주고 사먹는 세상,
2009년도에 류재범 대표는 다시 나를 새로운 사업의 파트너로 선택해 주었고 우리는 합법적인 웹하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파일찜 커뮤니케이션 법인을 설립하고 방송사들과 M.O.U 계약을 체결했다.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불만 사항이 무엇인지 먼저 감이 오던 나는 하루에 삼백통 이상의 전화를 받으며 고객의 불만해결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24시간 민원처리센터를 만들어 회원 관리를 철저히 해 나갔다.

합법화와 양성화가 이루어지면서 콘텐츠 사업의 고객 수는 더욱 급증했고 비슷한 사이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회원관리에 신중을 기한 우리 사이트의 회원수는 관리할 수 있는 한계치를 이미 넘어섰다. 그 여세를 몰아 부실경영 사이트를 인수, 통합해서 C&C 미디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국내외 회원수 3,000만 명을 보유한 메이저 온라인 유통사로 탈바꿈했다.

삼십대 초반에 이사의 자리에 오른 나. 이쯤이면 기대를 버린 지 오래인 아버지를 찾아 뵈도 될까? 새어머니를 찾아가 이복동생과 함께 저녁도 먹으며 그들 역시 나로부터 소외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집으로 지인들을 불러 술자리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를 그 술자리에서 아들이라 소개하셨다.

아버지의 지인들과 술을 한잔 곁들이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 때의 기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가족으로 다시 인정을 받게 된 것도 기뻤지만 가족을 배제했던 나의 바다에 그들의 외로움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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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외로움의 바다에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고 있나요? 갑자기 ‘바리새인’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신다고 들었는데 뭔가 관련이 있을 거란 감이 오네요.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말처럼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외로움마저도 품고 또 품으면 제가 그 깊이보다 더 깊어지고 그 넓이보다 더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은 저만큼 외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생각하게 된 거고요.

어느날 연극배우인 후배의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작은 무대 위에 올라있는 세트와 조명과 배우들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혼연일체 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처럼 저를 압도하는 그 열정적인 모습과 빈틈없는 계산으로 관객의 호흡을 쥐고 흔드는 움직임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먼지 하나에도 저는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나름 돈 좀 번 선배가 밥 한 끼 산다고 배우들을 모아 고기를 먹이며 뿌듯한 심정을 느끼고 싶었는데 무대 위에서 내려온 그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아 대학로를 떠도는 그들 하나하나가 다 저보다 큰 바다를 갖고 있더라고요. 저보다 더
현실적인 파도였고 저보다 더 품이 넓은 파도였죠.

너무 추상적인 얘기고 그걸 이제야 알았냐 하시겠지만 아무튼 앞만 보고 달리던 제가 시야를 넓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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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들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생각했다.
언젠가는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당당한 남편이 되고 든든한 아빠가 되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며 나를 다독여 왔던 시간들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나를 위로하기 위한 하나의 형식이자 수단에 불과했던 지금까지의 목표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형식과 율법과 겉치레에 얽매인 사람들을 뜻하는 ‘바리새인’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을 때, 이 말이 나의 올 해를 좌우하고 나의 평생을 다스릴 의미가 될 것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바리새인 같은 세상,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 내가 자라온 외로움의 바다가 허상이 아니라면, 거짓이 아니라면 이제는 바리새인의 껍데기들을 버리기 위해 현실화 시키자. 그리고 무대 위에 서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나의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영화였고 영화 ‘바리새인’이었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신이라는 존재의 뒤에 숨어있던 ‘승기’가 철학과 신입생이 되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욕망과 가치관의 유희에 한줄기 정액을 뿜어버리는 영화 ‘바리새인’은 배우로서 새로운 기회를찾는 이들의 간절함과 세상을 향한 나의 간절한 이야기가 만난 작품이다.

바다는 넓고 크고 깊어서 바다가 아니라 늘 바다였기 때문이라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을 갖고 태어난 천생 배우인 사람들에게, 그리고 외로움을 대신할 콘텐츠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늘 찾아 오를 수 있고 늘 마주할 수 있는 무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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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anks to…
내게 자신감과 끈기를 주신 할아버지, 가족의 의미를 알게 해주신 부모님,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하는 지혜를 전수하신 류재범 대표님, 그리고 C&C 임직원 분들께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이 영화를 드리고 싶다.

‘바리새인’은 김태균 대표와 마고필름의 첫 영화이다.
제작사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김대표는 오늘도 촬영장에서 밤을 지샜다. 그리고 동이 터오는 방향을 향해 차를 몰아 C&C 미디어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너무나 너무나 워커홀릭인 그에게 당신도 좀 더 편안해 지길 바란다는 말을 건넸더니 동문서답을 보낸다. 누구든 세상이 힘들고 외로울 때면 혼자서 구석을 찾지 말고 물방울처럼 모였으면 한다고 바다는 비 따위에 젖지 아니하니까.

글 김장훈 PD, 사진 송재원·전용재 기자



e뉴스팀 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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