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AD]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千日野話] 거시기를 저시기하고…(50)

최종수정 2014.05.10 10:17 기사입력 2014.03.17 11:27

댓글쓰기

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50)
[千日野話] 거시기를 저시기하고…(50)


퇴계의 혀를 차는 소리에 공서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잇는다.

"해구신은 물개의 거기를 잘라 백 일을 말려야 만들 수 있는 물건인지라 한 달로는 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추상같은 영이 내려갔으니 강원목사가 바빠질 수밖에요. 그런데 이 목사, 전갈을 받고 나더니 갑자기 머리에 뭔가 번뜩 떠오르는 게 있어 양양군수에게 다시 명합니다. '왕이 심신이 몹시 쇠하였으니 해구신 세 개를 구하여 20일내로 보내도록 하라.' 파발마가 이렇게 전하자 양양군수는 다시 귀가 번쩍 뜨입니다. 급히 속초현감에게 영을 내려 '임금께서 급환(急患)을 앓으시고 있다. 해구신 네 개를 구하여 보름 이내로 올려라.' 전갈을 받은 속초현감, 물개잡이 어부를 대령시켰다. '네, 이노옴. 어명이시다. 임금님이 막 승하하실 판이니 급히 물개를 잡아 해구신 다섯을 대령하라. 열흘 내에 가져오지 못하면 네 목을 베리라.'"

"저런…."

퇴계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됐소이까?"

"아, 예. 어부는 겨울이라 얼어붙은 속초 바다에서 물개를 잡을 방도는 없는데, 저토록 서슬 퍼런 엄명이니 살기 위해선 잡지 않을 수도 없는 딱한 지경이 되었지요. 그래서 방바닥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데, 문득 아내가 들어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합니다. 거시기를 저시기하고 저시기를 뭐시기하면 될 것이니 너무 심려 마옵소서. 이 말에 물개잡이 어부 남편은 크게 기뻐하며 벌떡 일어나 일을 시작했지요"

"거시기를 저시기하고?"

"허허. 예. 어부가 한 일은 이렇습니다. 물개가 없으니 해구신 대신 토구신(土狗腎ㆍ개의 거시기) 다섯 개를 장만했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영을 꿰고 있는지라 어부는 네 개는 은박지에 싸고 한 개는 정성스레 금박지에 싸서 속초현감에게 올립니다. '바다가 얼어붙어 해구신은 하나밖에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머지는 토구신입니다.' 현감은 어부에게 크게 치하하고 다섯 개를 받아 모두 풀어봅니다. 서로 비교해보니 모두 거의 비슷하여 어느 게 어느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웠지요. 그는 금박지로 싼 것은 은박지로 갈아싸서 빼돌리고 나머지 중에 하나에 금박지를 정성껏 씌워 네 개를 양양군수에게 보냅니다. 군수도 그것을 풀어보고는 금박지는 자기가 먹고 은박지 중 하나에 금박지를 씌운 뒤 세 개를 강원목사에게 보냅니다. 강원목사도 금박지는 일단 챙기고 남은 두 개 중에 하나에 금박지를 씌워 이조판서에게 보내지요. 판서 또한 금박은 일단 잡수시고 나머지 하나에 금박지를 옮겨 싸서 임금께 바칩니다. 임금은 강원도 속초에서 방금 올라왔다는 해구신을 드시고는 회춘이 되어 몹시 기뻐했다 합니다. 모든 게 마음 아니겠습니까."

"과연, 얼얼하구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음 날 아침에 임금이 이조판서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판이 나를 위해 애써 준 덕택에 짐의 기력이 살아났으니 충직한 신하들을 크게 칭찬해주시오. 그리고 이 겨울에 고생고생하여 물개를 잡아 상납한 기특한 어부를 대궐로 부르시오.' 어부가 며칠이 걸려 대궐에 도착했고 임금은 하사품을 잔뜩 내렸다 합니다. 어부는 그것들을 받아들고 한계령 고개를 넘을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가다가, 고개 위에서 한양을 돌아보며 이렇게 소리쳤답니다. '이, 개 뭣도 모르는 넘들이 무슨 정치를 한단 말이냐?'"

"허허. 그 풍자가 참으로 맵소. 나라의 기강이 문드러지고 벼슬아치들이 썩어 빠져 탐욕과 패악을 일삼는 것을 어찌 저렇게도 신랄하게 표현해냈단 말이오. 물론 우스개로 만든 것일지 모르지만, 어찌 저 비슷한 일이 없었겠소? 백성들이 비웃고 있다는 것을 정치한다는 사람들만 전혀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벼슬이랍시고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는 저 또한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입니다."

[千日野話] 거시기를 저시기하고…(50)
"사또께서 어찌 그런 무리와 동렬에 놓을 수 있는 분이시겠습니까?"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퇴계는 손사래를 치면서 문득 시 한 수를 읊는다.

"군수가 되어 어설픔과 게으름이 부끄럽네 / 백성은 굶주린 채 봄을 맞으니 마음엔 근심뿐이네 / 외방에 눈이 덜 녹은 붉은 벼랑가에 갔다가 /가파른 산중에 노을 풍경을 읊으며 돌아왔네 // 햇살이 초목의 싹에 입김을 불어 넣으니 사람이 도리어 부러워하네 / 하늘은 갈매기를 한가롭게 놀게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네 / 열 집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니/ 한가한 거문고 노래가 어찌 백성의 노래를 바꿀 수 있겠는가"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해구신 두개를 올려보내라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