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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해구신 두개를 올려보내라(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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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49)
[千日野話]해구신 두개를 올려보내라(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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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물을 묻는 까닭은 바다를 산 위에 올려놓는 의미라고 하였다. 행사를 마친 뒤 퇴계는 일행과 함께 산을 내려와 마을 한복판 옥터거리에 있는 큰 우물인 단양정(丹陽井)에서 다시 기우제를 지냈다.(18세기 들어 단양관아의 정문이었던 상휘정(翔輝亭)은 단양의 소금정(邵今鼎)공원에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 붙어있는 지명인 소금정은 바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추출하던 솥이 있던 곳을 의미한다)

이렇게 바쁜 봄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어느 날 다시 공서가 찾아왔다. 퇴계는 무척 반가이 맞았다.
"안 그래도 이제나저제나 그대가 오나 기다렸소이다."
"아아, 그러하셨습니까. 이심전심인 듯하여이다."
"얼마 전 소금무지산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며, 옛사람이 말한 염매조갱(鹽梅調羹)을 생각하였습니다."
"염매조갱이라 하시면… 서경(書經)의 열명편(說命篇)에 나오는 구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은나라의 고종이 재상 부열에게 말한 그 대목입니다. 국에 간을 맞추려면(和羹) 스스로 소금과 매실이 되라고 한 구절 말입니다."
"어찌 그 생각을 하시었는지요?"
"내가 단양에 와서 두향이란 아이를 만나 매화 향기를 깊이 맛보았고, 또한 소금무지산에 올라가 소금을 묻고 하늘에 절하였으니 염(鹽)과 매(梅)가 한꺼번에 다가온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아아. 그러니, 사또께서 단양을 위해 온몸을 바쳐 화갱(국의 간을 맞추는 일)을 하시겠다는 뜻이옵니까? 척박한 땅에서의 목민(牧民)이 쉽지 않은 일인데, 그토록 마음을 깊이 쏟으시니 몸이 상할까 오히려 걱정이오이다."
"산속 같은 곳에서 신선처럼 지내니, 어찌 몸이 상하겠습니까?"
"하기야 참으로 신선이 살 만한 곳이외다. 단양이란 이름도 삼도서(三道ㆍ도교 경전)의 연단조양(鍊丹調陽)을 줄인 말이라 하더군요. 연단은 연금단약(鍊金丹藥ㆍ장생불사약)을 가리키는 의미도 되겠지만, 단전(丹田ㆍ배꼽 아래)을 단련시키는 비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 조양은 몸속에 양(陽)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이니, 연단과 조양은 바로 심신수행술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도교의 중요한 개념인 단(丹)과 양(陽)을 그 지명으로 얻은 것은, 선풍(仙風)이 감도는 이곳의 기운을 볼 때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나 또한 단양이 천하의 비기(秘機)와 닿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암(仙巖) 아래쪽으로 가면 명소단조(明紹丹?)이라는 암각글자가 있는데, 이 뜻이 무엇이냐를 두고 말이 갈립니다. 명소는 이 부근에 머문 형제 두 사람(이명과 이소)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있으나, 이 사람들에 대한 다른 기록들이 전혀 없습니다. 단조는 선약(신선의 장생불사약)을 끓이는 솥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왜 글자로 새겨져 있는지를 아는 이는 못 만나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암 일대의 골짜기를 단조협(丹?峽)이라 하니 명소단조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여러모로 도가(道家)의 정취가 깊고 자욱한 곳입니다. 단조협과 단양 혹은 단구(丹丘)라는 이름이 모두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전에 구담에서 만났던 이지번 이지함 형제 또한 신선을 꿈꾸는 사람들이니, 이곳의 정기를 한껏 품고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선 이야기는 그만하고, 여행길에 듣고보신 이야기나 들려주오."

모처럼 만난 벗이 도술 타령을 늘어놓자, 퇴계가 웃으며 말을 잘랐다. 공서 또한 화제를 바꾸자는 제안에 유쾌해 했다.
"하하. 요즘 세상이라는 것이 하도 재미없는 것이 돼놔서… 가담항설(街談巷說)도 썩 들을 만한 것이 없더이다. 강원도 속초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 한 자락은 그래도 매운 맛이 있긴 하던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매운 맛이라… 구미가 당깁니다."
퇴계의 말에 공서가 이야기를 푼다.
"선대(先代) 어느 대에 늙은 상감께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합니다. '요즘 짐이 왜 그런지 기운이 몹시 쇠한 지경이로다. 밤만 되면 졸리기만 하고…' 그러자 이 말을 무심코 듣고 있던 이조판서가 갑자기 눈빛이 반짝였지요. 그는 조정을 나와 급히 강원목사에게 파발을 띄웠지요. '왕의 기력이 약해지셨으니 해구신 두 개를 구하여 한 달 이내로 보내라.'"
"저런… 쯧쯧."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 단양 두악산의 소금무지祭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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