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노무현 명예훼손’ 징역 8월 확정…“우리은행 삼청동지점 계좌는 없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소사실의 특정, 사자(死者)의 명예훼손죄의 심판대상과 판단기준, 증명책임과 증명의 정도, 차명계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증명책임을 전도하여 사실을 인정한 잘못이 없다”면서 조현오 전 청장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조현오 ‘차명계좌’ 발언 무엇이기에= 조현오 전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이던 2010년 3월31일 청사에서 기동부대 지휘요원 특별교양을 실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뭐 때문에 사망했습니까? 뭐 때문에 뛰어내렸습니까? 뛰어버린 바로 전날 계좌가 발견됐지 않습니까, 차명계좌가? 10만원짜리 수표가 타인으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표돼, 발견이 됐는데, 그거 가지고 아무리 변명해도 변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거 때문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겁니다.”
조현오 전 청장 발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둔 시점에 나왔다. 조현오 전 청장은 당시 서울경찰청장으로서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발언에 여론의 시선이 쏠렸던 이유다.
◆2004년 우리은행 삼청동 지점?= 조현오 전 청장 발언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이었다. 그는 발언의 근거를 묻자 처음에는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상황을 알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제2부속실 여성 행정관 두 사람의 차명계좌에서 완전히 세탁된 10만원짜리 수표가 다량으로 10억원 이상 입금된 것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차명계좌는 우리은행 삼청동지점이었고, 2004년께 수표가 입금된 후 안 쓰고 있다가 대통령 퇴임 무렵에 꺼내 사용했다는 내용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차명계좌’ 출처? 당사자는 아니라는데= 조현오 전 청장은 ‘차명계좌’ 발언의 출처를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자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 임모씨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말을 바꿨다. 조현오 전 청장의 변호인 측은 항소심에서 “고급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사건 강연 당시 임씨로부터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씨는 항소심 증인으로 출석해 이 사건 발언 내용과 같은 정보는 취급하지 않으며 그러한 내용으로 조현오 전 청장에게 말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2심 재판부는 조현오 전 청장의 해명에 대해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의혹 부풀린 조현오 해명= 판결문에 따르면 조현오 전 청장은 경찰청장에 취임한 이후인 2010년 12월26일 “내가 말하면 큰 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죠”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차명계좌의) 연결계좌까지 포함하면 거액이라고 진술하는 등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보강하면서 강의 내용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현오 전 청장이 ‘차명계좌’를 둘러싼 의미심장한 얘기를 할 때마다 “어떤 근거가 있으니 그런 얘기를 하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이어졌다. 이러한 행동으로 ‘언론플레이’에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재판부는 발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성호 판사는 1심 판결문에서 “피고인 태도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기는커녕 도대체 강의 내용을 알게 된 경위에 관한 피고인 입장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 조현오 엄중 질타= 재판부가 조현오 전 청장의 ‘차명계좌’ 발언을 엄중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공인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일반인 입장에서 경찰청장 발언은 비중 있게 경청할 수밖에 없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냈다기보다는 뭔가 근거가 있을 것이란 시선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얘기다. 차명계좌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2심 판결문에서 “(조현오 전 청장은) 자신이 발언의 근거라고 제시했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믿었다는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등 진지한 반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고심 판결 의미에 대해 “정보의 진위에 관해 다른 경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사실인 것처럼 언급했다”면서 “자신의 발언이 허위인 점에 관해 최소한 미필적 인식은 있었다고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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