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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그날밤 남녀, 체위를 논하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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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38)

[千日野話]그날밤 남녀, 체위를 논하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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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여섯 가지를 굳이 자세히 열거할 필요는 없으리라. 소녀경에 나오는 것이니 참고하면 되리라. 제4법은 선부(蟬附), 제5법은 귀등(龜騰), 제6법은 봉상(鳳翔), 제7법은 토연호(兎沇毫), 제8법은 어접린(魚接鱗), 제9법은 학교경(鶴交頸)이다. 선부는 매미가 바싹 붙은 자세이고, 귀등은 거북이 기어오르는 모습이며, 봉상은 봉황이 하늘로 다리를 뻗으며 날아오르는 자세이다. 또 토연호는 토끼가 다리의 털을 빨고 있는 모습이며, 어접린은 물고기가 비늘을 서로 문지르는 형상이다. 학교경은 학이 서로 목을 교차하는 자세인데, 그것이 어떻게 부부생활에 적용되는지는 상상력에 맡기는 게 좋을 듯하다.

다만 제3법인 원박에 대해선 좀 얘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행수기생은 그날 밤 대화에서 고려 남녀상열지사인 '쌍화점'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는 말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경과 쌍화점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곰곰이 짚어본다. 두향은 이 고려가요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기생에게서 들은 바 있었다. 조선사람들은 고려의 풍기문란을 짐짓 비판하면서 그때의 분방한 성적 분위기를 은근히 즐기는 측면이 있었다. 두향은 그때 그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웃기는 했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두향이 궁금해 하자 퇴계는 아주 점잖은 말투로 이걸 설명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전 시대 성(性)의 노래가 가히 지나친 점은 있었지만, 굳이 배격하고 내다버릴 것은 아니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본성을 옥죄고 뒤틀어 참된 욕망이 무엇인지도 잃어버린 채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성애에 사로잡힌 시대엔,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순수함일 수도 있지 않은가. 우선 그 노래를 따라가보자.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는데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쌍화점의 쌍화는 만두를 말한다. 속을 채운 만두를 오므린 부분이 꽃 같다 하여 쌍화(雙花)이다. 꽃의 성기와 만두의 모양과 인간의 성적인 기호를 겹쳐놓은 은유라 할 만하다. 만두는 몽고의 음식이며, 회회아비는 몽골인이거나 아랍인이다. 쌍화를 사러가는 여인 또한 낯선 남자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고려와는 다른 문화체계를 선망하는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만두가게 종업원과의 연애는 당시 고려에는 '촌스럽지 않은 삶'의 기호였을 수 있다. 손을 쥐지 않고 손목을 쥐었다. 몸의 밀착과 다급하게 진행된 상황이 '손목'에서 느껴진다. 거기엔 남자의 욕망이 표현되어 있는데, 여자의 동의는 행간에 감춰진다. 반항이나 놀람이 있었다면 그 뒤에 표현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쥐더이다'라며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있다. 여기엔 손목을 쥔 자에 대한 기소나 분개가 전혀 없고, 오히려 그에게 내가 선택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랑이 느껴질 정도이다. '손목을 쥐더이다'는 육체관계를 은근하게 표시한 것이다. 퇴계는 이 노골적인 성애의 시에서 무엇을 말한 것일까. 조금만 더 읽어보자.

이 말씀이 이 점(店)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지금 여기서 벌어진 일에 관한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가고 또 들어오면, 정사를 목격한 어린 떠돌이 네가 한 말이니 추궁하겠다. 처음에 여인이 직접 청중을 향해 이미 고백을 해놓고는 만두집 가게에서 일하는 어릿광대를 향해 입막음 말을 한다. 외간남자와 정사를 벌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그것이 물의를 일으켜 자신의 사회생활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 이 노래가 품는 풍자이다. 새끼광대를 향해 여인이 협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로러거디러'나 '다리러더러'가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퇴계는 이것이 식자들이 말하듯 현악기 소리를 차음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풀어냈을지도 모른다. 의성어 같은 저 표현이 아까 소녀경에서 말한 9법 중의 세 번째 법인 '원박(원숭이가 나뭇가지 어깨에 걸치기, 보통 다리걸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의 자세를 말한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몽골인 혹은 아랍인은 고려에 색다른 체위를 전파했는데, 그것이 저 '다리걸기' 체위였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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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불을 끄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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