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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力國力]이력서에 '기혼'이라 쓰면…면접관은 '감점'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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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과제조명-⑥미혼선호]미혼·미모가 여성 '스펙'인 사회

채용조건엔 기혼자 제한 없지만
취업시장선 기피대상 우선순위
"육아.가사로 경쟁력 저하" 편견

[女力國力]이력서에 '기혼'이라 쓰면…면접관은 '감점'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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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1. "결혼하셨는데 아직 아이가 없네요. 언제쯤 낳으실 건가요?" 결혼 3년차인 이나영(34)씨는 지난해 경력직으로 이직하려 면접을 봤다 면접관의 한 마디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직 계획이 없다'고 답하자 또 다른 면접관이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 곧 낳을 것 아니냐"고 물어왔다. 이씨는 면접 내내 불쾌함을 떨쳐낼 수 없었고, 결국 면접 문턱을 넘지 못해 이직에도 실패했다. 이씨는 "기혼자라 꺼려진다면 면접장에 부르지나 말았으면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 서른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 중인 김현지(29)씨는 면접 때마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바로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놓고 언급하는 면접관은 없었지만 최근 1~2년 새 이런 말을 자주 듣는 것이 김 씨는 못내 서럽다. 김 씨는 "졸업하고 나서 바로 정규직으로 취업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용모 단정 미혼여성'.

몇 년 전까지 우리나라 채용광고에 단골로 등장했던 문구다. 워낙 광범위하게 쓰여 마치 사자성어처럼 느껴졌던 이 8글자는 노동부가 2007년부터 대대적인 단속을 하기 시작하면서 채용 공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놓고 용모단정한 미혼여성을 찾는 '간 큰' 기업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혼ㆍ미혼 여성들이 취업 현장에서 8글자의 족쇄에 묶여 있다.

◆취업시장 미혼 선호 뿌리 깊어 = 최근 첫 딸의 돌잔치를 치른 박현지(31)씨는 차라리 나영씨처럼 '면접에 오라'는 연락이라도 받아보는 게 소원이다. 사무직으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냈지만 매번 서류 과정에서 퇴짜를 맞기 일쑤다. 박씨는 "채용 공고에 '미혼 여성'이라는 조건이 없다고 해서 실제로도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갓난 아이를 둔 기혼자는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푸념했다.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든 여성들은 박 씨같은 고민을 한 번쯤 하게 마련이다. '조건제한 없음'이라는 공고에 기대를 걸고 서류를 내보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기업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혼자를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과 달리 국내는 이력뿐만 아니라 가족관계까지 모두 이력서에 기재해야 하는 문화를 갖고 있어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기혼자를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는 구조다.

성차별적 채용광고도 몇년새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표본집단(기업 8000곳)을 정해 채용광고에 성차별적 내용이 포함됐는지 조사한 결과 2010년 3.4%에 불과했던 비중이 2011년 5.6%, 2012년 4.7%, 지난해 5.7%로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대형 온라인 취업 포털에서 '용모단정 미혼여성'으로 검색하면 여전히 많은 채용공고가 검색된다. 채용조건 제한은 걸지 않았지만 우대 사항에 미혼여성을 추가해 사실상 기혼자를 배제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기업들이 교묘하게 정부 규제를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미혼 우대는 국내 노동시장의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경력단절 여성의 증가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다. 윤정혜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자녀보육방법과 기혼여성의 노동시장 참가' 보고서에서 "결혼 연령기인 29세 이전까지 고용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다 출산ㆍ육아기인 30~34세에 최저점으로 하락하면서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있다"며 "경력단절 이후 진입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 또한 낮아 인적자본 투자낭비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혼여성 외모도 면접때 영향 있어
여성직원에 '파트너 인식' 필요

◆'미모의 미혼 여성'만 대접받는다? = 미혼여성을 우대하는 분위기 때문에 괴로운 것은 기혼여성 뿐만이 아니다. 미혼여성을 우대한다지만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직장의 꽃' 정도로 여기는 시선에 모멸감을 느끼는 일이 적지 않다.

미혼인 임수현(33)씨는 최근 이직 과정에서 본 단체 면접에서 면접관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임씨에게 직무 내용을 묻기보다는 '미인이다'라며 칭찬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미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임 씨였지만 면접장에서 혼자만 칭찬을 들으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임 씨는 "직무능력과 용모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불쾌하기만 했다"며 "적지 않은 인사담당자들이 '여자는 얼굴만 예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직장에서 여성들의 용모를 두고 농담하거나 성희롱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건수는 2009년 166건에서 2010년 210건, 2011년과 2012년 각 216건으로 증가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여성 직장인 1036명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33.6%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중에서도 성적인 농담(복수응답, 63.5%), 외모ㆍ몸매 비하 발언(32.8%) 등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기혼 여성들 능력ㆍ책임감 인정해야 = 우리 사회 깊이 뿌리박힌 미혼 선호현상을 고치기 위해서는 여성 직원을 '짐'이나 '꽃'이 아닌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희자 루펜리 대표는 "많은 기업들이 기혼여성은 육아와 가사 때문에 미혼 여성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큰 오산"이라며 "아이를 길러야 하는 기혼여성들이 미혼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강하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현주 엠큐릭스 대표는 중소기업들이 기혼여성 고용을 기피하는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며 정부의 육아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대표는 "대기업의 경우 인력 여유가 많아 한 사람이 빠져도 자리를 메울 사람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여유가 적어 장기간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국가가 어린이집을 늘리고 기업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을 늘려 걱정 없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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