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응 아닌 뚜렷한 계획으로 이직
'능력있는 잡호핑족' 인식에 변화
[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A 컨설팅 회사 대리급 직원인 이차명(가명, 34)씨는 요즘 마음이 뒤숭숭하다. 같은 팀에서 일하던 동료가 고액 연봉을 받고 경쟁사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자신과 업무 능력을 비교했을 때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한 동료가 연봉을 올려받고 떠나 이씨는 동요하고 있다. 이 참에 나도 한번 옮겨볼까하는 마음이 들어 헤드헌터와 상담을 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이씨의 엉덩이가 들썩거릴 동안 그의 직속 상사인 어순혁(가명, 40)씨는 요즘 직원들의 동향 파악에 분주하다. 최근 이직한 직원으로 인해 팀 분위기가 급격히 어수선해지고 있다. 연봉을 올려받고 이직한 직원을 따라 줄줄이 이직이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직무에 익숙한 사원의 이탈은 팀의 업무력에 치명적인 손실이다. 새로 직원을 뽑는데 드는 채용비용과 교육비용 등을 고려해봐도 기존 직원을 잡고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은 기업 490곳을 대상으로 '올해 평균 이직률'을 조사한 결과, 평균 15.8%로 조사됐다.
이직 사유로는 '연봉 불만족'이 24.2%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업무 불만족'(20.3%), '일신상의 이유'(17%), '기업 불만족'(7.3%), '자기 계발'(6.3%) 등이 뒤따랐다. 9.2%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직원 이탈로 인해 기업들은 '공백기로 인한 업무 차질'(56.4%, 복수응답), '대체 인력 채용을 위한 비용 발생'(35.8%), '직장 내 사기 저하'(33.4%), '관계사ㆍ고객 등과의 관계 차질'(12.6%), '정보ㆍ기술 등 유출'(9.4%), '기업 이미지 실추'(8.5%)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또 기업의 대부분(91.5%)은 직원 이직으로 1인당 약 1284만원의 금전적 손실을 입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이 문제 - 조직 내 인간관계가 이직의 또다른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설유진(34,가명)씨가 다니는 광고회사는 업계 특성상 경력사원의 비중이 더 크다. 설씨도 이곳에 오기 전 다른 광고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 직장과 예전 직장은 연봉이나 업무 환경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설씨가 이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 직장에서 경력 사원들끼리 '서열문제'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 연차가 높은 사람이 누군지 확실히 정리하는 사람이 없어 일부는 경력을 속이기도 하고 이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잦았다. 설씨는 "분명히 나보다 경력이 없어보이는 사람이 선배 노릇을 하니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며 "이 때문에 주먹다짐까지 벌이는 동료들을 보니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연봉'이 아니라 '적성' 따라서 -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1년 정도 일한 연재남(가명, 29)씨는 처음 보는 사람과 곧바로 친구가 되는 직장동료 B씨의 영업 능력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스스로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친분을 곧 영업력으로 연결시키는 '영업맨'은 자신의 적성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연 씨는 영업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 신입부터 도전할 생각이다. 연 씨는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고액 연봉으로도 해결되지 않더라"며 "연봉이나 직장 선호도를 떠나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했던 이직이지만 예전 직장이 그립다 - 신중히 결정한 이직도 때론 후회를 불러일으킨다. 조건 상으로는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적인 이직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또다른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사회복지사 김연경(가명, 28)씨는 올해 초 2년 동안 몸담았던 비영리단체를 떠나 대기업의 복지재단으로 이직했다. 그룹홈을 만들어 방황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보람된 일이었지만 낮은 연봉과 열악한 업무 환경을 더이상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밖은 만만치 않았다. 기업의 복지재단은 선한 의지와 사회복지적 가치로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었다. 김씨는 "철저히 기업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복지재단의 일은 사회복지사를 꿈꿔왔던 어릴 적 꿈과 괴리가 컸다"며 "많아진 연봉만큼 업무도 비례하면서 자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봉이지만 보람됐던 옛 직장이 생각나지만 김씨가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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