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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인간에게서 해방 40년...수천만리 '철새 낙원'된 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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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알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 '율도'...60년대 한강 개발과 함께 폭파

밤섬은 11월 하순이 되면 철새들의 낙원으로 변한다. 물오리와 왜가리, 가마우지 등 각종 새들이 겨울을 나는 보금자리로 이용한다. 사진에서는 가마우지떼가 밤섬 하늘을 날고 있다.

밤섬은 11월 하순이 되면 철새들의 낙원으로 변한다. 물오리와 왜가리, 가마우지 등 각종 새들이 겨울을 나는 보금자리로 이용한다. 사진에서는 가마우지떼가 밤섬 하늘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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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영화 '김씨표류기'의 주인공은 사채 빚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한강변에 투신한 그는 죽지 못하고 밤섬에 표류하게 된다. 63빌딩과 국회의사당, 고층의 빌딩과 한강변 아파트 등이 손 뻗으면 닿을 위치에 있지만, 정작 '밤섬'에는 나무만 무성하고 사람은 없다. 유람선이 유유히 지나가고, 밤이 되면 온갖 조명이 한강을 비춰도 밤섬에 있는 김씨는 바깥 세상과 완벽하게 격리돼 있을 뿐이다. 번번이 탈출에 실패한 김씨는 결국 도심 속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로소'와 같은 생활을 시작한다.

극의 재미를 위해 과장된 부분도 없진 않지만 영화 속 상황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당인동 사이 한강에 위치한 '밤섬'은 현재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돼있다. 작정하고 한강에서 배를 타고 가지 않는 이상 일반인이 '밤섬'에 가기란 힘든 일이다. 가더라도 상륙은 금지돼있다. 영화 속 '김씨'가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순찰을 나온 한강정화 작업반에 끌려 섬을 벗어난다.)
밤섬이 처음부터 무인도였던 것은 아니다. 여의도 근처에 인접해 있던 밤섬은 고려시대에는 귀양지였고, 조선시대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업자들이 모여 사는 조그만 강마을이었다. 뛰어난 풍경을 자랑해 '작은 해금강'이라고도 불렸으며, 당대 풍류를 아는 시인이며 문인들은 마포 강변에서 밤섬을 노래하며 정취를 즐겼다. 조선 초기부터는 마을 사람들이 뽕나무와 감초를 재배했는데, 서울 장안에 뽕잎 값이 비싸면 밤섬에서 뽕을 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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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은 밤섬에 대한 옛 기록이다. 1556년 '명종실록'에서는 "밤섬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닐 때 남녀가 서로 껴안고 업고 건넜다"며 풍속이 자유로웠다고 적고 있다. 사실이야 어찌됐든 고립된 섬사람들에 대한 외부인들의 경계와 호기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조선말 김정호는 '대동지지'에서 "밤섬은 섬 전체가 수십 리의 모래로 돼 있으며, 주민들은 부유하고 매우 번창한 편"이라고 소개하면서 밤섬을 마포 8경 중 하나로 손꼽았다. 밤섬의 옛 이름은 '율도(栗島)'다. 인근에 있는 마포 와우산에서 볼 때 그 모습이 꼭 잘생긴 밤알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아름다웠던' 밤섬은 1960~70년대 개발논리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당했다. 1967년 박정희 정권은 '한강 개발 3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강변도로 건설, 잠실 개발, 공유 수면 매립에 의한 택지개발 등과 함께 '여의도의 도시화'가 주요 추진사항에 포함됐다. 그 과정에서 밤섬은 하루아침에 폭파됐고, 폭파 부산물로 나온 골재는 여의도 윤중제(섬둑)의 자재로 사용됐다. 당시 정부는 440여명의 밤섬 주민들을 폭파 직전에 와우산 기슭으로 이주시켰고, 주민들은 밤섬이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통곡했다. 역사와 전통, 환경과 문화의 가치가 개발 논리에 꺾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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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폭파 공사로 밤섬은 중심부가 파헤쳐져 윗 밤섬과 아랫 밤섬으로 나누어졌다. 섬의 태반이 깎여져 나간 자리에는 한강의 퇴적물들이 점차 쌓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나무와 풀이 우거져 동식물들이 찾아들었다. 강에 실려 내려온 버드나무 씨앗들이 스스로 싹을 틔워내 자라났고, 겨울철새인 민물가마우지는 이곳에서 겨울을 났다.

곳이어 갯버들, 억새 등 식물 190여종, 멸종 위기종인 흰꼬리수리와 천연기념물인 원앙 등 9700여 개체의 조류, 황쏘가리등 어류 30여종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지난해에는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버려지다시피 한 이 곳이 자연의 힘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밤섬은 우여곡절 끝에 자연으로 되돌아갔지만, 한강의 많은 섬들이 근현대화를 거치면서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원래 뽕나무가 많은 섬이었던 잠실 일대는 1971년 잠실 공유수면매립사업 이후 빌딩과 아파트촌으로 변했고, 옥수동과 금호동 사이 한강의 큰 모래섬이었던 '저자도' 역시 1960년대 한강 개발로 매립됐다. 현재 이 자리에는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가 들어섰다. 양화대교 중간에 위치한 선유도는 원래 풍경이 빼어나 뱃놀이를 하던 섬이었지만 현재는 뭍과 연결돼 정수장 시설을 재활용한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인간이 만들어낸 섬도 있다. 한강변 모래언덕이었던 노들섬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섬이고, 반포대교와 동작대교 중간에 위치한 서래섬은 1980년대 올림픽대로 건설 당시 조성된 인공섬이다. 반포대교 남단에 위치한 세빛둥둥섬 역시 1000억원대짜리 세계최대의 인공섬이다. 2011년 완공됐지만 2년째 사업이 난항을 겪다가 내년에서야 전면 개장된다.

한강의 장구한 삶 속에서 생겨난 많은 섬들이 불과 최근 50년 사이에 혹은 아예 사라졌고, 잠실과 뚝섬, 여의도, 난지도처럼 혹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육지가 됐다. 반면 인위적으로 만든 섬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잘 살아보겠다고 온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밀어붙이는 사이, 밤섬은 조용히 '자연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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