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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털이 곤두서 관이 찢어진다"…정조의 한글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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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조정에 흉한 상소(凶疏)가 가득하여 매우 음울하고 참혹하니, 고금 천하에 어디 이처럼 흉악하고 반역하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분통이 터져 나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서 관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1772년 7월21일 정조가 세손이던 때 외할아버지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다. 세손(정조)의 외조부 홍봉한과 정순왕후의 오라비 김귀주로 대표되는 두 외척 간의 갈등의 정점을 이룬 영조 재위 중 김귀주가 직접 홍봉한에 대한 상소를 올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해 정조는 총 39통의 편지로 억울함과 분노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지에는 세손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편지의 글씨 모양과 내용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 이날의 상소를 문제 삼아 김귀주를 흑산도에 유배했다. 이로 인해 김귀주 일파는 영원히 관직에서 퇴출된다.

특히 편지 꾸러미에는 글씨나 정황으로 볼 때 혜경궁 홍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편지가 피봉에 포함돼 있다. 정조의 편지를 아버지 홍봉한에게 제때 전달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봉서를 보내라 한 말씀을 받들고도 못 보내었으니 죄송한 마음 끝이 없습니다"는 언문으로 된 사연이 담겨 있다. 혜경궁 홍씨의 남겨진 글씨가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 글씨 자체도 가치가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국립중앙도서관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글판 '정종대왕어필간첩(正宗大王御筆簡帖)'을 발간했다. 한국고전적국역총서 제11집으로 국역 발간된 이 어찰첩은 정조 세손 시절의 저술 과정과 학습 내용, 정치 상황, 그리고 외가와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다.

정조의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발언이라는 점에서 어떤 사료보다 중요하다. 또한 많은 편지 내용은 '실록' 등의 공식 역사기록과 비교를 통해서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홍봉한에게 보낸 어찰은 지금까지 학계에 공개된 적이 없다. 이 어찰첩이 그 첫 번째 시도다. 앞으로 다른 기관이나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어찰첩들이 공개되고 번역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립중앙도서관은 매년 도서관 소장 유일서 및 희귀서 중에 가치가 높은 자료를 발굴, '한국고전적국역총서'로 발간·제공해 관련 연구자 및 일반 국민들의 고전에 대한 관심 및 한국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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