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 두드려 한자한자 새긴 현판 글씨, 역사를 새기는 작업"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故) 목판본,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우리나라가 인쇄술의 종주국임을 증명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羅尼經)'과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이다.
통일신라시대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다라니경은 무병장수와 악업의 소멸을 비는 주문(呪文)으로, 석가탑에 봉안됐던 것이다. 6m짜리 긴 두루마리 형태로 폭이 6.6cm밖에 안 돼 글자들이 빼곡하다. 최근 청주 고인쇄 박물관은 고려 우왕 3년(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의 금속활자 복원 작업에 한창이다. 직지는 승려 백운 화상이 부처와 선배 승려들의 말과 글에서 뽑은 선문답이다. 직지 금속활자본은 현재 상ㆍ하권 중 하권만 프랑스에 남아 있다.
인쇄술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판에서 목활자, 금속활자로 나아갔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서각(書刻, 글자를 새기는 일)은 인쇄의 기초가 된다. 서각의 다른 말인 '각자(刻字)'란 표현은 경국대전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인쇄업무를 담당한 주자소(鑄字所) 내 여러 직책 중 글자를 주조하는 각자장(刻字匠)이 포함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은 오옥진(78세)ㆍ김각한(56)씨다. 오씨와 김씨는 스승과 제자 사이다. 각자장의 경우 취약종목으로 여겨져 두 명의 보유자를 지정해뒀다.
28일 서울 서초구 방배본동 김씨의 공방을 찾았다. 지하1층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에는 길게는 십년이 넘게 보관된 나무판자들이 즐비하다. 이날 김씨는 직지의 목판을 복원하고 있었다. 하권의 전체 38장 가운데 14장이었다. 사실 직지는 금속활자본으로 인쇄된 후 일년 뒤인 1378년 목판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목판본의 경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3곳에 소장돼 있다. 고인쇄박물관은 목판본을 토대로 사라진 직지 금속활자본 상권의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김씨는 "목판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한국전쟁으로 불타거나 훼손돼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면서 "남아 있는 목판본을 토대로 다시 목판을 만들거나, 고증을 통해 사라진 과거 현판을 복원해 놓으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또다른 증빙 자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6살 때 서각을 접했다. 고향은 경북 김천이지만 두 다리를 다치게 되면서 서울 동대문구 한 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시절 그는 전통공예를 배우겠다는 열정 하나로 일주일에 3~4번씩 목발을 짚고 3시간씩이나 걸어 종로의 한 공예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전통공예를 배우면서 '서각' 작품 중 가슴에 꽂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수선전도 목판본'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김정호가 그린 수도 한양의 지도를 나무에 새긴 것이었다. 이를 본 후 김씨는 서각의 대가로 알려진 오옥진 선생을 찾아갔다. 스승에게서 칼을 갈고, 망치로 칼끝을 두들겨 글씨를 새기는 일을 배웠다. 서체를 제대로 알기위해 서예와 한문 공부에도 열성을 다했다.
그동안 김씨가 참여한 서각 작업은 굵직한 것만 꼽아도 60여개에 이른다. 1986년 스승과 함께 독립기념관 현판을 만든 후, 김씨는 서울 기원정사의 법당후불, 강원도 고성 건봉사의 금강경 후불, 사찰 건물의 현판 등을 제작했다. 후불이란 법당의 불상 뒤쪽에 걸어놓는 불화(佛畵)로, 대개 그림이 많지만 그의 작품은 불교 경전의 문장을 나무에 새긴 것이었다. 경복궁 건청궁ㆍ태원전ㆍ함하당의 현판, 화성행궁 현판 34점, 최근 복원된 숭례문 현판 등의 복원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가 서각을 가르친 지도 벌써 10년째를 맞았다. 김씨는 현재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 서각 분야를 맡고 있다. 그는 "제자들 중에는 40대 이상 중년들이 많은데, 3년 넘게 배운 이들도 30명이나 된다"며 "맘 속으로는 서각을 업으로 삼고 전통을 이을 만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지만 젊은 친구들이 별로 없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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