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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한전 직원들은 '인간발전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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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공장-상가 돌며 절전 호소
협조 전화 등 총동원
12~14일 사흘간 수요관리 활동으로 140만kW 아껴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너 이놈들, 우리 건물에만 감시하러 나온 거면 알아서 해! 전력 문제는 니들이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전기 쓰지 말라고 하는 게 말이 돼?"
한국전력 직원이 수도권 지역의 한 빌딩을 찾았을 때 일이다. 다짜고짜 막말이다. 속사포로 내뱉는 건물 주인의 이야기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맞는 얘기도 아니다. 최근과 같은 사상 유례없는 전력난을 일으킨 주체는 어느 한 집단을 콕 짚어 비난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전력 수요와 공급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것은 정부와 전력거래소의 잘못일 수 있다. 원전 부품 비리 파문으로 여름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대형 원전 3기의 가동을 멈춘 한국수력원자력도 전력난의 원인 제공자다. 기업에 절전 규제를 막무가내로 압박하는 한전도 어떤 식이든 관련돼 있다. 전기요금이 싸다는 이유로 별 생각 없이 전기를 과소비하는 국민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르신,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다른 건물 현장에도 절전 부탁드리러 동료들이 나가 있어요. 저희도 힘든 건 마찬가집니다. 시원한 물 한잔 하시죠." 일단 땀방울을 훔치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분위기를 달래고 본다. 실제로 요즘 한전 직원들이 절전 운동을 나가 현장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지난 12~14일 역대 최악의 전력난을 앞둔 11일 전력당국이 전국의 총 발전설비 용량을 따져보니 8552만kW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있는 23기의 원전 중 가동을 멈춘 6기의 원전과 기타 사유로 발전정지 중인 설비를 감안하면 8월 셋째 주 가동 가능한 발전설비 용량은 7794만kW로 추산됐다. 같은 주 필요한 전력량은 어림잡아도 8000만kW 이상이었다. 산술적으로 200만kW가 넘는 전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국전력 부산지역본부 직원들이 절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국전력 부산지역본부 직원들이 절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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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직원들은 결국 현장으로 나가 '전기 구걸'에 나섰다. 전기 판매사인 한전이 전기를 써달라는 구걸이 아닌,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전은 12~14일 전국 사업소에 최대 비상사태의 사전단계인 '청색비상'을 발령하고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사흘간 하루 평균 6600명(누적 2만명)의 한전 직원들이 현장으로 투입돼 절전 독려 활동을 펼쳤다.

정부가 각종 절전 규제 등 수요 관리 대책을 내놨지만 사실 '나(우리) 하나쯤이야. 과태료 좀 물지'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탓에 직접 얼굴을 맞대고 설득하지 않으면 기업이나 가정의 자발적 절전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조업에 차질을 빚는 것보다는 벌금을 조금 내더라도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 절전 규제 동참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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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경기북부본부의 경우 아파트 내 절전 방송 요청, 백화점ㆍ영화관ㆍ마트 등 직원 현장 상주 절전 독려, 관내 50kW 이상 주요 고객 절전 협조 전화 안내, 가두 절전 방송, 관내 협력사 및 계약 업체 절전 협조 요청 등 수요 관리 활동을 사흘 내내 실시했다.

이곳에서 수요 관리를 담당하는 박원규 차장은 "최악의 사태까지도 우려했는데 공장을 포함한 전 고객이 절전에 적극 동참해줬다"며 "앞으로도 전 직원이 합심해 수급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12~14일 위기 상황에서 각종 수요 관리를 통해 일평균 687만kW의 전기를 아꼈다. 당초 정부의 계획치(515만kW)를 150만kW가량 초과한 수치다. 이 중 한전 직원들이 발로 뛰면서 현장에서 조치한 절전량은 140만kW 상당이었다. 원자력 발전소 한 기 반 정도의 전력을 한전 직원들의 땀방울로 해결한 것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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