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정으로 새겨낸 금속 위 문양들..1년 걸려 만든 보석함 하나
창조경제 DNA-명인명품 8. 금속조각장 김철주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조명아래 놓인 구리 상자 위로 구름과 당초 문양이 그려져 있다. 망치와 정으로 금실과 은실이 문양도안 위에 하나 하나 박힌다. 장인의 손길에서 나오는 섬세한 망치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작업대 위에는 여든이 넘은 노 장인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14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 있는 김철주(사진·80) 조각장의 공방을 찾았다. 중요무형문화재 35호인 그는 스물 일곱살 때부터 50여년간 전통 금속조각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출생인 김씨는 초대 조각장 보유자인 김정섭 선생의 셋째 아들로 일찍부터 선친의 어깨 너머로 금속조각을 접했다. 그가 금속조각을 처음 배우던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금,은,동 등 금속을 강제로 공출해 가 일반인이 자유롭게 사용도 할 수 없었고 판매도 힘들어 가내수공업 형태로 주문을 통해 제작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아버지가 보유자로 인정된 후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김씨는 와룡동, 효자동 등에서 일하며 금은세공과 조각을 익혔다. 특히 값비싼 은을 대신 알루미늄에 처음으로 조각을 새겼던 부친의 뜻을 살려 김씨도 알루미늄판에 '반야심경'을 새겨 액자, 병풍 등으로 여럿 조각해왔다. 작업에는 그가 직접 제작한 수십가지의 정이 사용된다. 무늬를 장식한 후엔 표면을 정돈하고 광을 내고 약물을 담그며 마무리한다.
금속조각의 바탕재료로는 주로 은이나 동 같은 무른 금속이 사용되고, 표면을 파서 속을 채우는 상감재료에는 바탕재료보다 잘 늘어나는 금이나 동을 사용한다. 금속을 다루는 일은 특히 힘들고 어려워 금속공예장인은 다른 장인들에 비해 고대사회에서도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매우 정교한 금속조각 보석함 하나 만드는 데는 1년 이상이나 걸린다. 금속공예품은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온 지 수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삼국시대 무기류, 칠지도, 마구, 화살통에선 철제은입사장식이 돋보인다. 고려의 '포류수금문정병'에서는 가는 선으로 무늬를 나타낸 선상감 기법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 왕실이나 절에서만 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귀한 금속공예품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그 맥을 이어갔다. 그때부터 조각장들은 주로 서울 광교천변 금은방도가(金銀房都家)에 모여 공예품을 만들었다.
점차 그 수요도 줄고 알아주는 이들도 덜하게 되면서 금속공예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게 됐지만 여든의 나이에도 그는 "선친의 수준까지 도달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고 있다.
"작품에는 온 정신과 함께 몸까지 들어가는 마음으로 임해야 해요."
시대와 환경이 변했지만, 그에게 금속조각은 여전히 바로 그 자신이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