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자살, 자원봉사로 그 폭력성의 사슬 끊어내다.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청소년 사망 최대 원인으로 자살(1위 자살, 2위 교통사고)을 꼽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청소년 자살율이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것은 일진이 아니라 남을 이기지 않고는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짧은 쉬는 시간에 가학적인 놀이로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의 내면과 그러한 내면을 만들어낸 학교와 사회의 폭력적인 구조”라고 주장한 어느 선생님(조영선)의 지적이 새삼스럽지 않다.


희망편지

희망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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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전문가, 도처에 경찰순찰차가 주변을 맴돌지만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던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문제에 서울시 한 자치구가 자원봉사를 통해 의미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12일 도봉구(구청장 이동진)에 위치한 정의여자고등학교(교장 조석제)에서 ‘희망편지’라는 자살예방과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요약하자면 학생들이 직접 익명성을 빌어 자살이나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적고 자신들 경험이나 아픈 기억들, 고민 같은 내용을 편지에 담아 또래 학생들에게 편지로 보내는 새로운 개념의 자기치유형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이날 진행은 다채로웠다. 정의여고 1, 2학년 학생 884명을 대상으로 진로탐색을 위한 직업탐방 교육이 실시됐다. 이어 학생들에게 청소년 폭력, 자살예방 교육이 이어졌고 ‘희망편지’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에 이어 학생들의 편지작성과 설문서 작성으로 일단의 봉사가 마무리됐다.


이날 ‘희망편지’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도봉구 영시니어 봉사단 이배사랑 회원 44명이 학생들의 편지 쓰기를 도왔으며 봉사단은 ‘희망편지’를 감수하고 장난편지 걸러내기, 좋은 편지 선별은 물론 무엇보다 상담을 필요로 하는 고위험군의 편지를 따로 가려내는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쓰여진 희망편지는 또래 학생들에게 전해져 학교폭력이나 자살 등 폐해에 대해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서로 확인하며 치유에 대해 공감대를 넓혀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희망편지’의 핵심은 바로 익명성이다.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데 아날로그적 감성을 갖은 편지를 활용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도봉구자원봉사센터의 판단이다.


그동안 보복이나 학교내부문제로 묻히기 쉬운 학교폭력, 자살에 대한 예방책으로 캠페인이나 교육에 머물거나 사후 약방문식으로 터진 문제를 수습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보편적 대응책이었다면 ‘희망편지’는 또래의 아픔을 공유하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고민을 쏟아내면서 실체적 아픔에 다가가는 ‘희망 찾는 통로’로써 가능성을 펼쳐 보인 것이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884통의 애틋한 사연이 아이들에게서 섬섬히 써졌다.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미안해 너를 외면해서…”


“겁나고 두렵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더 무서워…”


“그래, 내가 먼저 다가갈게, 우리 서로 격려하는 거 잊지 말자!”


한 반에서는 한 학생이 편지를 쓰다 말고 중학교 당시 학교폭력 사건을 떠올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교실 밖을 뛰쳐나가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영시니어 봉사단 이배사랑의 활약도 눈부셨다.


‘희망편지’라는 생소한 글쓰기에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강요보다 사랑으로 다가섰다. 용기를 북돋아주고 인생선배로서의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마침내 884통의 ‘희망편지’를 써낸 것이다.


이배사랑 최혜자 봉사단장은 다음단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상담이 필요한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남았다며 “학생들은 폭력의 당사자가 됐을 때보다 진심을 털어놓았는데 상대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느낄 때 더 상처를 받는다”며 상담역할 중요성을 상기했다.


이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희망편지’프로그램은 선례가 없었던 관계로 사전에 수없이 스크린과 교육이 진행됐고 진행 후에도 이배사랑을 중심으로 내부 평가회가 즉석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생소한 프로그램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전체교육도 좋지만 교실단위의 진행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과 함께 아이들이 자신들의 편지가 학교 측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다양한 주제 제시로 ‘희망편지’ 역할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폭력, 자살예방을 위해 ‘희망편지’ 역할이 무척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도봉구 관내에서 만이라도 모든 학교에 보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됐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우리 지역사회의 공동체가 가진 힘은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자살 문제가 벌어졌을 때 공동체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신뢰에서부터 시작된다"며 "희망편지는 학생들이 이 신뢰를 가지게 하는 출발점이자 강력한 계기가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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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한 도봉구자원봉사센터는 올해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자살예방 사업 일환으로 지난 5월 프로그램 공모가 있었으며 도봉구의 ‘희망편지’ 사업이 선정되면서 추진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자치행정과 (☎ 2091-2231)


박종일 기자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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