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재훈 기자]

[사진=정재훈 기자]

AD
원본보기 아이콘

[인천=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축구 클럽마다 특별한 등번호가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 7번은 에이스의 영혼을 상징하고, 포항 스틸러스의 18번과 20번은 황선홍-홍명보라는 두 레전드의 유산을 뜻한다. 부산 아이파크는 김주성이 달았던 16번을 아예 영구결번 처리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등번호 20번에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2011년 은퇴한 '영원한 캡틴' 임중용의 등번호다. 인천의 20번은 2011~12년 정인환(전북)을 거쳐 올 시즌 안재준에게 돌아왔다. 사실 그는 2008년 인천에서 데뷔한 직후부터 임중용의 후계자라 불렸던 인물. 당연히 대물림될 줄 알았던 20번을 받기엔 꼬박 2년이 걸렸다.

짧지 않은 세월을 돌아온 사연이 있다. 2010시즌이 끝난 뒤 안재준은 갑작스레 전남으로 트레이드됐다. 허정무 당시 인천 감독이 정인환을 데려오기 위해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제시했다. 팬들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유망주를 팔았다며 반발했다. 입버릇처럼 "영원히 인천의 선수로 남고 싶다"라던 안재준 역시 큰 상실감에 빠졌다.


영원히 끊어진 듯했던 인천과 인연은 2년 뒤 다시 이어졌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인천으로 다시 트레이드된 것. 공교롭게도 안재준은 정인환의 빈자리를 대체했다. 등번호를 고른 사연도 흥미롭다. 예전에 달았던 27번은 이미 한교원의 차지. 대부분 앞 번호들도 이미 주인이 있었다. 고를 수 있는 등번호는 정인환이 남겨두고 간 20번뿐이었다.

안재준은 당시를 떠올리며 "인천의 20번은 그냥 번호가 아니지 않나"라며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부담스러운 등번호였다.


결과적으로 엄살이었다. 안재준은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참은 물론, 인천 포백 수비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경고 누적 결장을 제외한 11경기에서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며 인천의 선전을 이끌고 있다. 팬들은 "드디어 20번이 주인을 되찾았다"라며 환호하고 있다.


존재감은 19일 안방에서 열린 강원FC와의 홈경기에서 더욱 빛났다. 그가 인천 유니폼을 입고 뛴 100번째 경기였다. 전반 41분 이천수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1-0 결승골까지 터뜨렸다. 의미 있는 날 터뜨린 자축포. 덕분에 인천은 5승(5무2패)째를 거두며 리그 4위로 뛰어 올랐다. 등번호 20번의 가치에 걸맞은 활약이었다.


[사진=정재훈 기자]

[사진=정재훈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안재준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인천은 나를 프로 선수로 입문시켜주고,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준 팀"이라며 "서포터즈도 경기장에서 보여준 것 이상으로 나를 사랑해줬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인천에서 100경기를 뛸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라며 "언더셔츠에 적어두었던 감사의 메시지도 경기 후 팬들에게 보여드렸다"라고 말했다.


일취월장한 득점력도 눈길을 모은다. 안재준은 데뷔 뒤 지난해까지 5년간 단 세 골에 그쳤다. 1월 동계 전지훈련 당시 그는 "올해는 수비뿐 아니라 골도 적극적으로 노리고 싶다"라고 다짐했다.


달라진 자세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즌 일정의 ⅓도 채 안 지난 현재 벌써 세 골. 이석현-디오고와 더불어 팀 내 최다골이자 K리그 클래식 수비수 가운데 가장 많은 득점이다. 그는 "우리 팀에 좋은 키커가 많아 집중력만 가지면 골을 넣을 수 있다"라며 겸손해했다.

AD

수장과 동료의 생각은 다르다. 안재준의 골을 도운 이천수도 "잘 찬 프리킥도 아니었는데 재준이가 굉장히 좋은 헤딩을 해준 덕에 골로 연결됐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김봉길 인천 감독도 "안재준은 축구밖에 모르는 선수"라며 "특별히 지적할게 없을 정도로 성실한 게 제일 큰 장점"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설 것을 대비해 세트피스에서의 역할을 주문했는데 기대대로 골을 넣어줘 기쁘다"라고 말했다.


안재준은 "내가 달고 있는 20번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라며 "그에 걸맞은 선수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인천의 등번호 20번은 올해도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전성호 기자 spree8@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