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비수기 공식이 깨졌다
영화·여행업종 '춘궁기' 사라지고 1년내내 호황..결혼·이사업체 '봄 대목' 사라지고 불황 허덕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전통적인 '성수기', '비수기'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 봄, 가을 대목을 노리던 결혼업체, 이사업체 등은 길어진 불황에 '성수기' 대목이 사라져버렸다. 반면 영화나 여행 업종은 수요자들의 달라진 소비패턴에 연중 '비수기'가 없어 즐거운 표정이다. 업종 간에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 1년 내내 '불황은 없다' =전통적으로 영화관의 최대 성수기는 명절과 방학이다. 1년에 두 번 있는 설날과 추석, 학생들이 쉬는 여름/겨울 방학이 관객들이 가장 많이 영화관을 찾는 시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나 각종 가족오락 영화들도 이 때를 겨냥해 개봉한다. 3~4월, 10~11월은 관객 수 자체가 적어 '춘궁기'라고 불린다. 그러나 관객들의 영화소비 패턴이 달라지면서 성수기, 비수기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주5일제의 확산과 얇아진 지갑 탓에 저렴한 가격에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영화관의 인기가 높아진 덕분이다. 감소세에 있던 극장 수도 지난해에는 전국 295개에서 314개로 6.4% 늘었다. 지난해에는 '건축학개론(3월)', '내 아내의 모든 것(5월)', '늑대소년(11월)' 등이 비수기가 무색하게 흥행에 성공했다.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한국영화 관객 수는 2월 기준으로 8개월 연속 1000만명을 돌파한 상태다. CGV 관계자는 "양질의 작품들이 꾸준히 나온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항공 및 여행업계도 성수기가 길어졌다. 여름 휴가기간인 7~8월에 집중되던 여행 수요가 다른 기간으로 분산된 데다 주5일 수업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가족 단위의 여행이 늘었다.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 관광수요도 증가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달 항공여객은 402만명을 기록,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역대 2월 중 처음으로 40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경기 침체에도 설 연휴 특별 수요 등으로 해외 여행객이 크게 늘었다.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가 수요의 증가와 저가항공사(LCC)의 확대, 각 여행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할인상품 등으로 계절적 비수기에 속하는 1~6월에도 여행객들이 늘었다. 일례로 지난 달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68만여명으로 2~3년전 7~8월 성수기와 맞먹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2.0% 늘었으며, 2009년 40만명, 2010년 51만명, 2011년 56만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홍석균 제주관광협회 마케팅부 부장은 "성수기, 비수기는 예전에 항공사들의 운항 편의를 위해 구분해놓은 것으로 별 의미가 없어졌다"며 "최근에는 '나홀로 여행족' 등 '비수기'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 성수기가 실종됐다=반면 비수기가 없어졌다기보다는 경기불황으로 성수기가 실종된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이사업체, 청소업체 등이다. 흔히들 성수기는 봄 이사철 대목인 2~5월, 비수기는 6~9월로 구분되는데, 성수기 실적이 예년 같지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 거래량은 총 4만7000여건으로 통계가 조사된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주택 거래가 없다보니 그만큼 이사 수요도 줄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국포장이사협회 관계자는 "성수기와 비수기 물량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성수기 실적이 그만큼 중요하다"며 "주택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1년 나기가 힘들어 폐업하는 업체도 많이 생기고 있다. 이전에 100건 들어오던 주문이 지금은 70정도에 그친다. 전부터 이런 분위기가 감지됐는데 본격적으로 체감된 것은 지난해부터"라고 말했다. K청소업체 관계자도 "이전에는 이사 들어가기 전에 청소업체를 부르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지금은 청소비마저 아끼려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결혼 관련 업체들도 불황에 비수기 같은 성수기를 보내고 있다. 신혼부부들이 결혼에 드는 비용을 줄이면서 3월 특수가 실종됐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에서도 '불황으로 결혼 비용을 줄였다'는 직장인이 전체 응답자의 88.3%를 차지했다. 일산 가구단지의 한 직원은 "예년이면 3~4월 주말을 이용해 가구를 보러 온 신혼부부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한산하다"며 "업체마다 가격을 많이 할인해도 실적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청담동의 한 한복집 관계자도 "젊은 층들이 결혼비용을 많이 줄이면서 한복도 생략하고 빌려 입는 경우가 많다"며 "봄 성수기라는 말이 무색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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